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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의 휴일 ROME #119 로마로 통하는 관문. 콘스탄티누스 황제 개선문.
수스키 | 2015.03.21 | 조회 3717




안녕하세요 수스키입니다> ㅡ < 오늘의 포스팅은 콜로세움 바로 옆에 있는 콘스탄티누스 황제 개선문입니다.






일댄 개선문은 무엇일까요?

기념문이라고도 하고 고대 로마의 장군, 또는 황제의 공훈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아치문입니다.

B.C. 2세기부터 이런 유형의 문이 세워졌으나 공화정치시대의 예는 현존하지 않는다고해요


오늘날 남아있는 예로는 대형 아치 단일형(티투스황제 개선문)과 아치 양측에 작은 아치를 붙인 것

(셉티미우 세베루스황제, 콘스탄티누스 개선문)과 테트라필론, 아우렐리우스황제 개선문의 3종류로 대별할 수 있으며,

보통은 아치 위에 아티크를 얹어 그 위에 조각상을 장식합니다.






개선문은 르네상스, 바로크 시대에 고대를 본떠서 가설 건축물로 세워지는 경우가 있었으나

신고전주의시대에 들어와서 본격적으로 부흥되었다.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1788~1791)와 파리의 카루젤 개선문(1806),

에투알광장 개선문(1806~1836), 런던의 마블아치(1828, 1851에 이전) 등이 그 좋은 예이이지요
















옛 기념물에 남아 있던 부분이 통합된, 312년에 세워진 개선문

이 웅장한 개선문은 로마의 손꼽히는 명소 중 하나로, 로마 황제들이 축하 행렬을 벌일 때 택했던 오래된 길인

'비아 트리움팔리스'에 서 있는 주요 유적이지요.


이 개선문은 티투스 개선문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개선문과 더불어,

고전기 로마 시대부터 온전한 상태로 살아남은 세 개의 로마 개선문에 속합니다.

보존이 정말 잘 되어있었어요

정말 많은 조각들이 보존 되어있었고 대리석의 색깔도 여전히 빛이나고 있었습니다.












이 개선문은 최초로 기독교를 받아들인 로마 황제라 알려지는 콘스탄티누스 1세가

로마 바로 외부에서 벌어진 '밀비우스 다리의 전투'(312)에서 거둔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건설되었어요.


이 승리로 인해 그는 서로마 제국의 단일한 지배자가 되었으며 기독교 세력이 성장하는 데에 중요한 기점이 되었지요.

하나의 개선문은 로마 황제의 자존심을 의미하기도 했다는.




이 인상적인 건축물의 높이 21m, 너비 25.7m, 두께 7.4m이지요.

개선문의 아래쪽은 콘스탄티누스가 전리품들과 더불어 지나갔을 육중한 중앙 아치와 사이드 아치,

대리석으로 된 지지 교각, 코린트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아티카 양식으로 된 꼭대기 부분은, 황제가 막센티우스와 벌인 전투와

그 승리를 표시하는 여러 장면, 인물, 글귀가 조각되어 있는 대리석 패널에 둘러싸여 있고요.


자세히 보면 콘스탄티누스가 장엄하게 이 개선문을 통과하는 그런 조각들이 많아요

순전히 국민들은 생각하지 않고 왕을 칭송하기 위해 지어진 건물같은 저의 개인적인 생각.,,,,






참조: [네이버 지식백과] 개선문 [凱旋門, arch, arcus] (미술대사전(용어편), 1998, 한국사전연구사),[네이버 지식백과]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Arch of Constantine]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세계 역사 유적 1001, 2009.1.20, 마로니에북스)





콘스탄티누스의 개선문은 재치 있는 재활용을 보여 주는 매우 오래된 본보기라 할 수 있는데,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시대에 세워졌던 옛 기념물로부터

장식 부분을 떼어오거나 개조해서 사용했기 때문이라고해요




대체 얼마나 많은 재료가 재사용되었으며 그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래서인지 더 개선문의 형태가 완벽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사실 이 부분이 정말 좋아요. 분명 오래된 재료로만 이루어져 있으면

그만큼 역사적 가치가 있는 거겠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이 유물을 보존하고 싶어하는 학자 그

리고 왕의 노력으로 계속 보존되어온 그 과정이 정말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우

리나라가 배워야할 점 중에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단순히 개선문에 나타나 있는 사건의 하나이기도 한 밀비우스 다리 전투에서

거둔 승리에 뒤따라 급하게 제작하느라 그랬을지도 모르지요

또한 의도적으로 콘스탄티누스를 많은 존경을 받았던 초기 황제들과 동일시하는 것이

그 목적이었을지도 모를지.....흠 흠 그럴 수 있기도. 정말 많은 의도를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콘스탄티누스왕 뿐만 아니라 그를 거쳐간 또다른 왕까지 다 이 개선문에 의미를 두는.








1700년대에 대규모 복구 작업이 행해졌으며, 현대로 와서는 1990년대 후반에 상당한 양의 작업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셀카 아래 이렇게 설명을 덧붙이니 뭔가 좀 오글오글 거리긴 하지만. 일단 저희에겐

셀카가 가장 중요했어요. 원래 친구사진도 받아서 같이 올리려고했는데.. 허허..

인터넷이 정말 느린 관계로 그냥..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친구에게 나중에 정말 맛있는 걸 사들고 영국으로 날라가야겠습니다. 하하하하







그리고 정말 마음에 드는 로마의 나무들.

여기 나무는 한국에서 절대적으로 단 한번도 보지 못한 형태를 하고 있어요

아마 뜨거운 나라이다 보니 약간 아프리카 느낌이 나는 그런 나무들이 많았어요

라이온 킹에서 그 원숭이가 사는 나무 같은 느낌의 나무도 있었고

정말 무슨 포토샵으로 그냥 대충 그려놓은 듯한 느낌의 나무도.


정말 예뻤어요.

나무도 이뻐 여기는 무슨...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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