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이즈미르 교환학생]_#55 영어강의 적응후기,
Ottoman Diplomatic History와
Turkish Foreign Policy
이즈미르경제대학교에서 한 교수님의 수업을 네 개나 들었습니다. 바로 오잔 교수님의 수업인데요. 국적은 다르고 공용어인 영어로 소통하지만 좋은 스승님을 얻었습니다. 또한
외교사(Diplmatic History)수업과 병행하며 오스만 제국사부터 터키대외정책까지 효율적으로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수업을 진행하는 오잔 교수님
서양외교사의 맥락 속에서 살펴본 오스만제국과 터키의 대외관계
강력했던 오스만 제국의 외교사는 곧 서양외교사의 핵심이기도 했습니다. 몰락하는 제국의 중후반기
때와 현재 중진국인 터키이지만 여전히 국제관계에서 꽤 비중이 큰 존재입니다. 오스만 제국은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필요했고, 터키 역시 소련을 저지하기 위한 주수단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국제관계에서 강대국(Great Power)은 아니지만 일정한 지역 내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국가를 지역강국 혹은 중급국가(Regional Power/Middle power)라고 부릅니다. 오스만 제국과 터키는 지역강국(중급국가)의 전형적인 사례로, 자국의 영토를 최대한 유지하면서도 강대국과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고 서구지향적인 대외정책을 펼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1주차 때 배운 터키 대외정책의 기조
일반적으로 강대국은 서구 열강들을 위시한 강대국, 그리고 강대국의 말석(Least of the Great Powers)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 이탈리아와 최근에 그 전략적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인도까지 포함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 유라시아 사이에 있는 터키, 북미와 남미 사이에 있는 멕시코, 분단된 한국을 중간국가로 포함할
수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한국과 터키는 냉전시기 동쪽과 서쪽에서 자유진영의 일원으로 경제원조와 군사동맹을 맺으며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본래 서양 문화권은
아니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차이점은 한국은 (적어도 외견상, 규모상으로는)선진국에 도달했지만 터키는 여전히 개발도상국에 머물러
있다는 것입니다.
▲시기별, 국가별로 분류하여 진행하는 Turkish Foreign Policy
또한 구한말, 일제강점기, 6.25를 거쳐 1950년대가 때부터 현대적 의미의 대외관계가 시작된 한국에 비해 터키의 대외관계는 매우 다채롭고 흥미로웠습니다. 수업시간에도 세부 항목이 국가와 시기별로 나뉩니다. 미국, 유럽, 러시아, 그리스, 발칸지역
국가, 중동 국가, 소련 붕괴 후 코카서스 삼국과의 관계를
시기별로 나누어 그 특성을 살펴보는 것입니다.
가장 열심히 공부했던 과목
한국에서는 오스만 제국외교사를 자세하게 배울 기회가 없었습니다. 오스만 제국의 외교사는 동시에
동유럽사, 보다 구체적으로 발칸지역의 역사, 부분적으로는
비잔티움 제국과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의 역사, 마지막으로 중동지역의 흐름도 이해해야 따라갈 수 있는 주제였습니다. 전부 생소한 주제였습니다. 정말 처음에는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모두 3학년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심화수업으로 공부할 양도 많고 교수님의 기대치도 매우
높았습니다. 특히 선택과목인 Ottoman Diplomatic
History의 경우 20장 내외의 레포트도 제출해야 했습니다. 그래도 나중에는 그래도 잘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수업 내용을 받아
적고 필기한 후,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기사를 첨부하며 추가적으로 더 표현을 연습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필기자료
Ottoman Diplomatic History의 경우 오히려 너무 자세해서 추가 자료를 조사할 필요는 없었는데,
Turkish Foreign Policy의 경우 굉장히 수업자료가 간결하여 별도로 공부해야 했습니다.
백과사전, 논문, 칼럼의 주요 부분을 찾아가며
다른 표현을 배워보고, 중요한 사건이나 인물은 수시로 점검하는 방식으로 공부했습니다.
배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Ottoman Diplomatic History는 중간고사 2회 각 15점, 발표 15점, 출석 및 참여 15점, 레포트 제출이 15점, 기말고사가
25점입니다. Turkish Foreign Policy은
중간고사 2회 각 20점,
발표 20점, 출석 및 참여 15점, 기말고사가 25점입니다.
시험방식은 객관식 문제 4~6문제, 약술형 문제 3문제, T/F문제 6문제, 지도문제, 기말고사의 경우 에세이를 작성하는 문제까지 포함됩니다. 마지막 시험에는 모든 범위를 공부해야 합니다. 교수님의 수업방식은
엄격하여 1분만 늦어도 강의실에 들어갈 수 없으며, 수업시간에
집중하지 않을 경우 쫓겨나기도 했습니다. 발표 중 대본을 읽는 행위는 용납되지 않았습니다.
어려운 주제와 엄격한 방식에 정말 긴장했지만, 결국 가장 친한 교수님이 되었습니다. 수업과 관련된 구체적인 질문은 물론 영어학습과 공부방법까지 폭넓게 의논하기도 했습니다. 나중에는 발표 하루 전날 자발적으로 미리 PPT파일을 같이 살펴보면서
오류를 정정하고 내용을 보강하는 작업을 함께하기도 했습니다.
터키 해협(Turkish
Straits)의 주권을 지킨 몽트뢰 조약(Montreux Convention)
▲터키 해협(Turkish Straits)
우선 터키대외정책 수업때에는 몽트뢰 조약(Montreux Convention)을 주제로 선택했습니다. 터키 해협(보스포루스 해협과 다르다넬스 해협)에 조약으로,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이 지역은 강대국의 각축장이었습니다.
1936년 터키는 몽트뢰조약을 통해 민간 상선의 통행은 모두에게 허용하되, 군함의 경우 제재할 수 있는
권한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추가적으로 흑해 연안의 국가들에게는 특혜를 주고 터키뿐 아니라 터키해협에
대해 민감할 수도 있는 국가들도 설득할 수 있었습니다.
▲발표 때 활용한 CIA 자료
▲당시 국무장관 에치슨의 발언을 인용
교수님과 의논하면서 한 국가가 주도한 조약이 다른 국가들에게도 이득을 줄 수 있었기 때문에 모두가 터키의 권한을 인정할 수 있었다는 점, 이 체제를 바꿔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했던 소련에 대응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미국과 터키가 협력한 점을 밝혔습니다. 마셜플랜(Marshall Plan)과 트루먼 독트린(Truman Doctrine)로 구체화되었다는 것도 발표했습니다. 이때
생생한 당대 증언과 기록을 토대로 발표를 준비했습니다.
한국과의 연관성을 제시해보며 준비한 발표 과제
▲갈리폴리 전투가 벌어진 차낙칼레
지난 학기 오스만제국 외교사 시간에는 한국인이기 때문에 해볼 수 있는 시도도 해보았습니다. 그때 제 발표주제는 갈리폴리 전투였습니다. 이 전투는 제 1차 세계대전
때 연합국인 영국, 프랑스, ANZAC(Australian and
New Zealand Army Corps: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연합 군단)이 러시아를
지원하기 위한 진로를 확보하기 위해 독일군과 오스만 제국군과 지금의 차낙칼레에서 벌인 상륙전입니다.
오스만 제국군의 분전으로 결국 이 전투는 연합군의 패배로 끝나게 됩니다. 이 전투는 상륙작전의
가장 좋지 않은 예시로 꼽히지만, 한편으로는 병사들의 용맹함과 강인함은 최고로 꼽히는 전투입니다. 이 때 참전용사의 후손들은
매년 4월 25일 ANZAC
DAY를 터키 차낙칼레에서 모여 당시 전사자를 추모하는 기념행사를 열고 있기도 합니다.
발표를 준비하면서 이와 같은 기본적인 사실을 꼼꼼하게 준비했습니다. 나아가 이 승리를 바탕으로 터키는 독립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근간을 얻을 수 있었고, 2차세계대전 이후 중립국으로 일관하다 마지막에 연합국에 가담하여 오늘날 나토의 일원이 될 수 있었음도 언급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훗날 이 모든 국가들이 다같이 한 편이 되어 함께 전쟁이 있다고 밝히며 마무리했습니다.
그 전쟁은 바로 한국전쟁입니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이 주도하는 냉전체제 속에서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UN군이 한국에 파견됩니다. 이때 갈리폴리 전투에서 싸웠던 모든 나라가 한국의 편에서 전쟁에 임했고, 덕분에
한국은 국가를 지켜낼 수 있었습니다. 무엇이 어제의 적을 오늘의 동맹으로 만들고, 그 국제정치의 흐름 속에서 자국의 이익을 어떻게 추구해왔는지 살펴보는 자세를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며
마무리했습니다.
정말 아쉬운 기말고사
부끄럽게도 기말고사를 다소 안일하게 준비했습니다. 마지막 시험이기도 했고 워낙 자신이 넘쳐 정말 중요한 소련붕괴 이후 터키의 대외관계를 더 자세히 보지 않았습니다. 평상시라면 꼼꼼하게 추가자료를 찾았을텐데, 그러지 않고 유인물만
가볍게 살펴보고 시험장에 들어갔습니다.
만약에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서 1시간이라도 평소처럼 준비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정말 많이 남습니다. 에세이문제를 작성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실수도 저질렀습니다.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다같이 찍은
사진
답안지를 교수님이 어떻게 채점하는지에 따라 AA를 간신히 받거나
BA에 그칠 수도 있습니다. 나중에 교수님께 인사하러 갈 때 이 이야기를 하니 마음을 비우고
한번 기다려보라고 하시면서, 그 경험을 좋은 교훈으로 여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