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4일
영국 도착 이백 열 여섯째 날!
주말같이 느껴지는 월요일입니다. 집 앞 미술관과 박물관 주변에는 사람들이 북적거립니다. 아이들과 함께 나온 부모님들, 다정하게 팔짱 끼고 걷는 연인들, 모두 햇볕을 즐기러 나왔나 봅니다. 216일 째 이곳 글래스고에서 지내면서 오늘같이 날씨 좋은 날은 처음인 듯 합니다. 일광을 즐기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사색한 것을 공유할까 합니다.
(4월 14일, 집 앞에 있는 'Kelvingrove Art Gallery and Museum'의 풍경.)
'좋은 날씨에 대한 편견'. 일반적으로 우리는 맑은 날은 긍정적으로 생각하지만, 흐린 날은 부정적으로 받아들입니다. 날씨는 그저 날씨일 뿐인데 말이죠. 생각해보면 우리 인간에게는 어떤 현상이나 사건을 대할 때, 옳고 그름을 따지거나 좋고 싫음을 나누는 성향이 있습니다. 그것들을 나누는 기준은 시대의 헤게모니와 이데올로기 속에서 계속 변하지만, 보통 황금률처럼 보이는 '보편적 일반화'라는 것을 따르게 됩니다. 우리가 정말 좋고 싫고를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을까요? 원초적 욕구에 바탕을 둔 것들을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의 것들에 대해서는 태어날 때부터 교육되어진 것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밥을 배고플 때 마다 먹는 것이 아니라 하루 세끼 정해진 시간에 먹는 것으로 어려서부터 배워왔습니다. 또는 "이거 하면 안돼요.", "이거 참 잘했어요." 등 선생님이나 부모님의 가르침을 받게 됩니다. 저는 이것을 '생후 교육의 유전', '교육에 대한 인위적 DNA'라 부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를 가르치는 부모님도 그들의 부모님에게 이런 식의 교육을 받아왔습니다.
그렇다면 절대적 기준으로 보이는 것들이 본능적으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후천적으로 습득되어지는 것이라고 한다면, 날씨에 대한 관념을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흐린 날을 가리키며 좋은 날씨라고 어려서부터 주입한다면, 그 아이는 커서도 비바람이 몰아치는 흐린 날씨를 좋은 날씨라고 기억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흐린 날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흐리다'가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의미 때문인데요. 사전에는 '잡것을 섞어서 맑지 아니하게 하다.'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저는 '언어적 표현의 한계가 미치는 영향'이라고 부릅니다. 모든 언어에는 각기 다른 그 언어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제약이 있습니다. 또한 무엇인가를 표현하려고 시도할 때, 우리는 '객관적 주관화'를 거치게 됩니다. 쉽게 설명 드리자면 '흐리다'를 말로 표현할 때, 말을 하기 전에 우리는 이미 '흐리다'에 대한 뜻과 의미를 알고 있습니다. 이미 정해진 것에 대해서 먼저 습득하고 우리 스스로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 제가 말하는 '객관적 주관화'입니다.
'흐린 날'에 대한 사전적 정의 말고, 우리만의 정의를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하늘에 구름이 잔뜩 낄 때 기억에 남을 만한 좋은 추억들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그럼 '흐린 날'은 '기분 좋은 추억을 상기시키는 무엇'이라는 나만의 새로운 정의로 덮어 쓰이게 되겠지요.
삶에서 때로는 감성이 이성을 이길 때가 필요합니다. 괴짜 같은 생각이지만, 비 오는 날 과일이 담긴 바구니와 돗자리를 들고서 소풍 가는 것은 어떨까요? 질퍽질퍽 젖은 잔디 밭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과일을 깎아먹고 있는 모습을 생각해보세요. 그렇게 낭만적이고 로맨틱하진 않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색다른 추억이 되어있지 않을까요?
위에서도 말했듯이 우리는 보편적인 현상과 그 규칙에는 목숨을 걸고 따르려고 하지만, 자신이 만든 기준에 대해서는 언제나 망설입니다. 우리가 정한 기준은 보편타당성이라는 잣대를 갖다 대어 그에 어긋날 경우 바로 버려지고 맙니다.
우산은 왜 쓸까요?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가 올 때 우산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굵은 비가 내림에도 많은 사람들이 우산을 쓰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바람이 너무 많이 불기 때문에 우산이 부러지는 경우도 많고, 우산을 쓰더라도 비가 일정한 방향으로 내리는 것이 아니라서 옷이 다 젖습니다. 우산은 그저 짐만 될 뿐, 무용지물이죠.) 옷이 조금 젖으면 어떤가요? 감기 한 번 걸리면 어떤가요? 매번 이것 저것 합당한 이유를 찾고 이성적으로 우리 스스로를 설득시킵니다. 대부분 삶의 나날 중 이성이 감성을 이길 때가 훨씬 많습니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감성이 이성을 이길 줄 아는 삶을 즐길 때, 진정한 행복을 느끼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영국이 참 좋습니다. 우산 없이 비를 맞을 수 있는 날이 많기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송골송골 맺혀 있는 빗방울을 훌훌 털어버리고 커피숍에 들어가면, 커피숍 안의 온기는 더 따뜻하게 느껴지고, 평소에 마시던 똑같은 커피도 더 맛있게 느껴집니다. 그때 느낄 수 있는 행복감은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젖은 옷이 거의 말랐을 때 쯤 커피숍을 빠져나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햇빛 쨍쨍 입니다. 저도 좋은 날씨에 대한 주입식 교육을 받았기에 파란 하늘 위에 이글거리는 햇빛이 비치는 날이 좋습니다. 구름이 더 선명하게 보이고, 하늘도 더 신비로워 보입니다. 흐린 날에는 하늘이 가까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맑은 날에는 그 하늘도 멀게 느껴집니다. 아니 실제로도 너무 멀리 있기에 쉽게 갈 수 없지만, 그래서 더 가고 싶은 충동을 자극하는지도 모릅니다.
때론 비교, 대비, 대조하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검정색이 있으니 흰색이 더 하얗고, 흰색이 있으니 검정색이 더 까맣습니다. 또 태양이 있으니 낮에는 더 밝고, 달이 있으니 밤에는 더 어둡습니다. 날씨도 이와 같습니다. 구름 잔뜩 끼고 비가 내리는 흐린 날이 있으니, 푸른 하늘 바람 한 점 없는 햇볕 아래 따뜻한 날이 더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것 아닐까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익숙해지는 것'아닌가요? 새로움은 언제나 잠시 잠깐일 뿐, '적응'이란 단어와 함께 어느 순간 우리는 주변의 모든 것에 익숙해지고 맙니다. 예를 들어, 지금 함께하고 있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던 첫 순간의 설렘을 잊은 체 소홀하게 대하거나, 또는 부모님이 주시는 무한 사랑에도 익숙해져 그 소중함을 느끼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유학, 어학연수, 교환학생, 그리고 여행 등으로 영국에 오시기 전,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시는 것들 중 하나가 바로 '날씨'입니다. 우리의 인식 속에는 영국은 흐린 날이 많은 우울할 것 같은 나라입니다. 그럼 미국의 캘리포니아는 어떤가요. 바닷물이 반짝반짝 빛나는 해변가 모래사장에 앉아 책을 보며 낭만을 즐기는 유토피아 같은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날씨에 대해서 만큼은 사람들에게 영국을 물을 땐 혀를 차지만, 캘리포니아 하면 '캬!~'하고 탄성을 지릅니다.
하지만 365일 내내 따뜻한 햇빛 속에 사는 캘리포니아 사람들은 진정으로 맑은 날에 대한 감사함을 알까요? 구름 가득한 하늘이 대지에 가까이 내려오는 흐린 날에도 감탄의 환호성을 외칠 수 있을까요? 그저 답답하고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일 것 입니다. 맑은 날은 그들에게는 당연한 것이고, 흐린 날은 치아에 낀 음식 찌꺼기 같은 불쾌감을 주는 것이겠지요.
다시 영국으로 건너 와 봅시다. 바람도 많이 불고, 비도 많이 오는 이곳 스코틀랜드에서는 모든 나날이 감사의 연속입니다. 하루에도 5~6번 씩 바뀌는 날씨는 우리에게 '익숙함'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아침에는 장대비가 땅을 뚫고 들어갈 것처럼 쏟아지더니, 점심이 되니 구름은 온데간데 없고 맑은 하늘이 펼쳐져 있습니다. 그러다 우박이 내리거나, 다시 비가 오거나, 더워지고 추워지고를 몇 번이고 반복합니다. 매일 새로움을 선사하는 스코틀랜드 날씨는 유학 생활 중인 저 뿐만 아니라 이곳 스코티쉬들에게도 굉장한 즐거움을 줍니다. 이 순간 만큼은 모든 사람들의 입가에는 미소가 가득합니다. '평화롭다'라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 입니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도로의 아스팔트가 빛을 내며 불타오르는 순간 서로 이렇게 인사를 나눕니다. "Enjoy short sunshine!" 삭막할 것 같은 대도시지만, 이때는 시골 사람들 같은 정다움을 느낄 수 있습니다. 흐린 날이라도 그들은 짜증내거나 불평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또 다른 '익숙함'일 수도 있겠습니다. 바람 불고 비 오는 날은 스코티쉬에겐 당연한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아무튼 영국 사람들은 흐린 날도 즐겁게 보낸답니다. 조금만 기다리면 또 금새 더 큰 즐거움이 찾아오니깐요. 행복하게 살고 싶으세요? 지금까지의 굳게 굳은 사고의 틀을 망치로 깨부수세요. 생각의 전환이 필요할 때입니다. 흐린 날을 만났을 때도 감탄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지금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삶을 살고 계시는 겁니다. :)
아래 사진들은 글래스고에 도착한 이래 이렇게 환상적인 날씨를 처음 만나봤습니다. 평소와는 완전히 달리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 번도 변하지 않은 Fantastic weather! 하하 저절로 감탄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네요. :)
(집 뒤편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River Clyde'라는 큰 강이 있습니다. 강 건너편에 보이는 'BBC Scotland' 건물과 '과학 박물관' 등이 보입니다.)
(위 글에 삽입된 모든 사진의 출처는 본인에게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위의 모든 내용은 본인이 직접 작성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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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K LIFE DAY 216
위대영 영국 유학 생활기
Christian Dae Young Wi's Life Dairy of Studying in United Kingdom
글라스고, 스코틀랜드, 영국
Glasgow, Scotland, 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