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반기문 사무총장이 UN 사무총장이 되지 않았다면, 우리의 UN에 대한 관심은 지금처럼 뜨겁지 않았을 것이다. 반기문 사무총장이 UN 사무총장이 된 이후 UN은 우리에게 낯선 단체가 아닌 한국인이 사무총장으로 있는 단체이며, UN건물은 그 분이 계실 것만 같은 친숙한 건물이다. 많은 한국인들이 UN 으로 가는 이유는 바로 그래서일 것이다. 나 또한 한국인, 어찌 반기문 사무총장의 초상화가 걸려있는 그 건물을 그냥 지나칠 수 있으랴. 어깨에 힘 잔뜩 주고 UN본부 건물로 향했다.
<보통은 여기에 국기가 걸려있다는데, 눈이 많이 와서 그런지 국기를 만나 볼 수 없었다. 그래도 웅장한 UN건물>
<유엔 건물 밖에는 이렇게 UN의 의미를 되새기는 조형물들이 전시돼 있다.>
UN본부에는 한국인들이 많이 올 것 같았는데, 의외로 한국인은 많이 보이지 않았고, UN본부라는 그 이름처럼 정말 많은 외국인들이 찾아온다 . 중국인들도 꽤 많아 보였고, 내 눈엔 다 비슷해 보이는 백인들이지만, 프랑스어, 스페인어,독일어 등 다양한 언어도 들려온다.
UN본부까지 들어가는데 줄이 한참 길다. UN본부 안에서는 간단하다고는 할 수 없는 마치 공항 보안 검색대와 같은 검문을 거친다. 보안검색에만 30분 정도 걸린 듯 싶다. 핸드백을 가져 온 사람은 별도로 가방을 맡겨야 하는 절차도 있는 것 같았는데, 아무래도 최근 UN관련 테러-아프가니스탄에서의 UN사무실 테러-와 같은 것 때문에 보안 검색은 더 없이 엄숙했다. UN하면 나는 평화의 상징 비둘기들이 날아다닐 듯한 밝고 온화한 분위기를 예상했었는데, 사실 보안 검색을 받는 동안에는 여기가 평화를 강조하는 UN맞는지, 뭐 그런 느낌도 들었었다. 워낙 딱딱하고 무서워서.
그래도 무서운 보안검색을 마치고 나면 비둘기는 없지만 따뜻하고 정감있는 UN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UN건물을 방문하면서도 UN가면 뭐가 있을까, 생각했던 나였는데, UN안에 들어가니 생각외로 굉장히 구경할 거리들이 많다.
<역대 사무총장님들. 반기문 사무총장님의 얼굴이 반가움을 넘어 자랑스러움으로 번진다.>
<방명록 남기는 곳. 반기문 짱. 음 반기문 짱!>
먼저 UN에서 실시하는 캠페인들에 대해 알기쉽게 꾸며놓은 전시장이 있다. 특히 내 눈길을 끌었던 건 팔레스타인 난민 어린이들. 사실 반홀로코스트까진 아니지만, 팔레스타인 분쟁과 관련해선 유대인들이 너무 이기적인 것이 아닌가, 매번 생각했던 나이기에 이번 전시도 너무 마음이 아팠다.
<팔레스타인 난민과 관련된 사진, 글들이 전시된 전시장.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생각할 줄 알고, 느낄 줄 알며, 웃을 줄 알고, 배우고 싶어하는 사람들.>
사실 저기 먼 곳에 있는 팔레스타인 아이들이 부모를 잃고, 학교를 못가고, 배를 곯고 하는 소식을 보면 쉽게 와닿지 않는다. 나와 피부색도 언어도 다르기에 잘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사는 곳을 돌아보면 정말 똑같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기타 여러나라나. 나와 똑같이 생각하고, 맛있는 것을 보면 맛있다고 느끼고, 예쁜 것을 보면 예쁘다고 느껴야 할 아이들은 대신 고통을, 슬픔을 먼저 맛보고 있다.
예전에 외교관계론 수업을 들은 후 UN의 능력에 대해 회의를 느낀 적이 있었다. 결국은 강대국들의 힘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고, UN은 결국 꼭두각시에 다름아닌가 하는. 이 부분은 아직 깊게 공부해보지 않아 생각해볼 여지가 있겠지만, UN의 힘이 정말 세계에 영향을 미치건 미치지 않건, 이렇게라도세계 어딘가에 UN이 힘을 실어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한 존재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다.
이번 아이티 대지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몇몇 연예인들이 아이티를 언급하는 것을 두고 선행마케팅이 아니냐는 씁쓸한 댓글을 읽었다. 그러나 그 동기가 무엇이건, 강대국의 힘이 논리가 어찌되었건, 아직 세계 곳곳에는 그런 것을 따질 겨를도 없이 결과만이 너무나 절실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독 끝에 묻은 열매라 할지라도 그 열매를 먹어야 살아갈 수 있는. UN은 그들을 위해 오늘도 달려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