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눈 오던 날에
미국은 눈이 오면 학교를 안간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눈이 많이 날리는 경우 운전하기가 힘들어서 학교를 안간다고 한다. 그래서 학교를 가냐, 안가냐를 그날 학교 스쿨버스가 운행하냐 안하냐로 결정하는 교수님도 계신다. 스쿨버스가 운행안하면 오지말거라, 하는 식이다. 아무래도 대중교통 수단이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다.
뉴욕에 있을 땐 눈을 많이 봤었는데, 학교로 돌아오고 부터는 날씨가 꽤 좋다. 반팔을 입고 다니는 학생들도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내일 모레쯤 눈이 많이 와서 아마 학교 모든 오피스가 문 닫을 거라는 얘기가 들려온다.
이렇게 쨍쨍한데, 설마 그럴까. 반신반의하면서도 개학 2주째 스케쥴에 지쳐가는 학생들은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한다. 내일 모레가 아니라 당장 내일부터라도 눈이 많이 오면 학교를 안갈 수도 있단다. 자, 룸메이트와 베팅을 한다.
아직 미국 날씨에 잘 적응을 못하는 나:
어떻게 이렇게 쨍쨍한데 학교를 안가. 난 학교 간다에 초콜릿 두개 걸겠어.
나를 어리다는 듯 쳐다보는 학교 짬밥 2년차 룸메이트:
아직 네가 잘 몰라서 그러는거야. 난 당장 내일부터 안갈 수 있다에 바나나 두 개 건다.
그렇게 바나나 두개와 초콜릿 두개가 걸린 베팅 결과는? 사이좋게 바나나와 초콜릿을 나눠 먹었다는. 다음날 오전은 날이 좋아 학교를 갔고, 오후부터 거짓말 처럼 눈이 쏟아지기 시작하는 거다. 그리고 정말 그 다음날이 되어 일어나 보니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있다. 당연히 수업은 캔슬되고 모든 학교 오피스들도 문을 닫았다.
자, 이렇게 눈이 오는 날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나. 멀뚱멀뚱 눈만 바라보는 나에게 룸메이트가 얼른 탈 수있는판대기란 판대기는 모두 챙기란다. 작년에 이미 경험을 해본 옆 방 친구들은 벌써부터 분주하다. 모두들 방수복으로 갈아입고 목도리와 털모자로 똘똘 무장을 한 다음, 모든 탈 수 있는 것들은 다 집합! 옆 방 몰리는 화장실 주의 표지판을, 나는 락앤락 리빙박스 뚜껑을 내 룸메이트는 쓰레기통 덮개를 뜯어왔다. 오마이 갓.
<저기 노란색 화장실 미끄럼 주의 표지판이 보이시는지.>
밖으로 나가보니 이미 많은 친구들이 천연썰매를 즐기고 있다. 평소에 차가 다니던 도로는 이미 최고의 리조트로 변신한지 오래. 이제부터 우리들의 빅 힐 찾기가 시작된다. 처음엔 기숙사 앞 조그만 언덕에서 썰매를 타던 우리들은 어느새 다운타운 언덕으로까지 진출. 이거 정말 제대로 된 썰매타기가 시작된다.
더군다나 차를 몰고 나갈 수가 없기 때문에 학교 식당은 평소보다 영업시간을 늘려 비상 영업을 한다. 다른 학교 오피스들은 다 문을 닫고, 학교 수업도 다 취소되고, 우리에게 남은 건 눈덮인최장의 언덕과 뷔페식 럭셔리한 밥이 제공되는 학교 식당. 이거 완전 학교가 밥먹고 놀라고 만들어준 선물이다. 썰매 실컷 타다 힘들면 학교 식당가서 몸 좀 녹이고 고기로 몸 보신좀 하고 다시 썰매타기 돌입. 정말 리조트가 따로없다.
이상 어느 눈 오던 날, 여기가 천국인가 싶던 학교 리조트 생생중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