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인트 루이스는 미국 역사에 매우 중요한 도시에요.
미국 역사에 서부 개척이 매우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다 아시죠? 서부 개척 영화도 굉장히 많고요.
어제 소개한 아치에서 조금만 걸으면 Old Court House라고 있는데,
지금은 세인트 루이스 역사관으로 꾸며져 있어요.
미국 대륙은 18세기에 영국과 프랑스가 집중적으로 차지하고 있었죠.
St. Louis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 도시는 원래 프랑스 것이었어요.
이 지역을 개척한 프랑스인들이 루이 14세로부터 봉토로 하사받았다는 의미에서
'세인트 루이스'로 불린 것이죠. 그랬기에 초기 세인트 루이스 이민자들은 프랑스인들이 많았구요,
프랑스인들이 인디언들과 교류하면서 모피 무역 도시로 유명했다고 해요.
그러다 미국 역사에 굉장히 유명한 사건이 일어나니, 이름하여 ‘루이지애나 매입’
1803년 당시 대통령이던 토마스 제퍼슨이 프랑스의 나폴레옹으로부터 루이지애나 영토 매입을 하게 된 것!
토마스 제퍼슨이 사인했을 당시 돈으로 1천5백만 달러로 미국의 영토를 두배로 늘인 이 매입은 당연
세계 최대의 영토 매입의 역사에 올랐죠.
계산해보면 에이커당 3센트에 매입한 것으로 미국의 중서부 서쪽 지역의 대부분을 가지게 된 것 입니다.
빨간 부분 전체가 당시 미국에 내준 땅덩이. 세인트 루이스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나폴레옹이 그 넓은 땅을 헐값에 내준 것은 러시아가 알래스카를 포기한 사건과 더불어 역사에 어리석은 선택이라 평가받고 있습니다. 미국에게는 뭐 당연 좋은 결과를 가져온 것이죠.
토마스 제퍼슨의 선견지명을 기리기 위한 기념 공원이라던가 이런 것이 많아요.
천하의 나폴레옹이었지만 미국의 프론티어 정신을 못 따라간 게 아니었나 하는 평도 있고요.
그 직후인 1804년에, 미국에서 서부 개척의 선구자로 추앙받는 루이스와 클라크가
서부를 가로질러 태평양까지 나가는 모험의 길을 떠난 기점도 세인트루이스 부근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탐험 뒤, 많은 백인이 세인트루이스를 거쳐 서부로 나아가게 되었죠.
즉, 세인트루이스는 미국 서부 개척의 전초 기지 역할을 한 셈입니다.
이 도시의 애칭인 '관문 도시(Gateway City)'라는 이름도 이런 역사 때문에 붙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역사를 가장 집약해서 보여주는 것이 이 도시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게이트웨이 아치(Gateway Arch)입니다.
왜 아치가 중요한지, 왜 그렇게 동그란 입구 같은 모양인지 아시겠죠? J
1804년 5월에 서부로 출발한 루이스와 클라크는 천신만고 끝에 1년 반 만에 태평양에 도착하였으며,
1806년 9월에 세인트루이스로 돌아왔습니다. 이것은 불과 200여 년 전 이야기.
이후 백인들은 세인트루이스를 거쳐 서쪽으로, 서쪽으로……..
이것은, 유럽에서 밀려든 이민자들에게는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하는 과정이었겠지만,
이미 그 땅에 살고 있었던 미국 원주민 인디언에게는 재앙의 시작이나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이후, 세인트 루이스는 루이지애나 매입 기념으로 1904년에 세계 박람회를 열기도 했던
국제적인 도시가 되었습니다. 요것이 그 포스터 되겠습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는 세계가 하나로
이리저리 엮이고 설키기 시작하는 박진감 넘치는 시기이죠.
+ 플러스 알파 상식) 19세기, 세인트 루이스가 조선과도 관련이 있다?
1893년에는 세계 박람회가 시카고에서 앞서 열렸었는데요,
세인트 루이스는 시카고 인근 도시로서 박람회 당시의 여러 국제 귀빈들이 방문하기도 했대요.
중요한건 그 중 조선 왕조에서 시카고 박람회에 파견된 정경원 대표도 있었다는 것!
사진이 바로 그 분이십니다! 히힛 아마 고종황제의 파견으로 미국에 오게 되었겠죠.
개화기에 막 세계 문물에 눈을 뜨기 시작한 조선이었으니까요.
시카고 박람회 당시 정경원은 시카고 외의 지역으로 워싱턴 DC를 방문해 미 대통령을 만났고,
다음으로 세인트 루이스를 무려 12시간 걸려 방문했다고 해요.
특이한 옷차림의 동양 코리아의 대표가 찾아오자 세인트 루이스의 수많은 사람들이
정경원의 모습을 보기 위해 몰려드는 소동이 벌어졌대요 ㅋㅋㅋㅋ
그래서 세인트 루이스 당국은 기마병력까지 배치하여 호위하는 예우를 베풀었다고..
정경원은 세인트 루이스에서 구경나온 어린 미국인 소녀와 대화를 나누기도 했고
밤에는 국제 연회장에서 사교 댄스 파티에 가기도 했대요 J
일리노이주와 경계하는 미시시피 강변에 자리잡은 세인트 루이스는 오늘도 도도히 흘러가는
미시시피 강을 바라보며 화려한 그 역사를 자랑하고 있어요.
서부로 가는 상징 기념물인 아치 앞에서 변화하는 넓은 세계를 느끼며 미시시피 강물을 바라보았을
19세기 조선인, 정경원은 어떤 생각을 하였을까요?
이 낯선 도시를 19세기 말에 걸었던 우리 조상의 숨결도 느껴지는 것 같지 않은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