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전 3번에 걸쳐 올린 생생한 실전 유학생활 스토리가 반응이 좋아서 이어서 연재하오니 유학시 참고하세요! 다양한, 많은 댓글은 저에게 큰 힘이 된답니다 :)
내가 다닌 홍콩의 미국계 국제학교는 매년 3월쯤에 모든 학생들을 대상으로 Interim이라는, 한 주간 다양한 국가로 수학여행을 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물론 원하는 나라로 모두가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5군데의 여행지를 각 학생이 고르면 학교에서 랜덤으로 한 군데를 지정해주는 것이었지만 유럽은 물론 피지, 남아프리카공화국, 라오스, 요르단 같은 특별한 곳들이 수학여행 장소로 제공되었기 때문에 다양하게 선택할 수 있었다. 나는 스페인, 피지, 프랑스, 뉴질랜드, 호주에 지원하였으나 지원 당시 나는 솔직히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유럽에 당첨되길 희망하였다. 그리고 대망의 결과 발표 날, 많은 학생들이 어디로 가게 될지 초조해하며 기대하고 있었다. 나는 피지섬에 가는 것으로 결정되었으나 원하던 유럽이 아닌데다 피지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었기 때문에 약간 실망하였다. 하지만 내 친구들은 내가 정말 부럽다며 여행 장소를 나와 바꿨으면 좋겠다고 부러운 눈길을 아끼지 않았다.
3월에 있었던 일주일간의 Fiji 여행은 내 생애 최고의 여행이었고 나를 뒤바꿔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호주 옆에 있는 피지섬. 홍콩에서부터 15시간정도를 비행기 타고 갈아타고 하면서 소비했지만, 도착해서 지내보니 paradise가 따로 없었다. 정말 피지인들이 사는 방식은 우리 모두가 본받아야 된다고 생각했고, 밤이면 볼 수 있던 수백 개의 별들을 포함한 경치, 음식, 사람들, 무엇 하나 좋지 않은 게 없었다. 처음에는 내가 고른 다섯 군데의 여행지 중 학교 측에서 랜덤으로 생소한 나라인 피지를 골라준 것에 대한 불만이 있었지만, 정말 여기에 구체적으로 몇 자 끄적거리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그리고 말로 형용할 수도 없을 양질의 추억을 만들어준 내 interim buddies, 선생님들, 학교, 모든 Fiji인들과 내 host family한테 감사할 따름이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또 이렇게 최고의 시간을 보낼 여행이 있을까 궁금하다.
미국계 학교에서의 새로운 학년이 되자 공부도 어려워지고 숙제도 훨씬 많아져서 숙제하는데 시간도 더 오래 걸렸다. 매일 리서치, 리포트, 프레젠테이션, 창의력을 사용해서 만드는 프로젝트 등의 어려운 숙제가 대다수인 데다가 시험이 일주일에 2-4개씩 있어서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학생들이 과제를 하느라 밤을 새우는 일도 많았다. 아주 작고 사소한 숙제라도 성적에 반영되었기 때문에 한국의 학교에서처럼 중간/기말고사만 잘 본다고 만회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또한 개개인이 필기/악기/합창 등 수업과목을 고를 수 있었던 음악수업 시간 때도 과제/실기준비 등이 매우 빡빡했으며, 체육시간에 하는 운동들도 정말 다양해지고 강도도 높아졌다. 수영시간에는 2m 가까이 되는 물 속에 긴청바지와 잠바 같은 두꺼운 긴팔옷을 입고 들어가서 수영장 5바퀴를 돌고 난 후 발도 닿지 않는 물 깊이에서 10분 넘는 시간 동안 살아남는 서바이벌 스킬로 성적이 좌우되기도 하였고, 도는 데 40분 넘게 걸리는 학교 주변의 산과 물을 한 바퀴 뛰며 돌아온 순서대로 시간을 측정하여 성적을 매기는 등 체육시간도 공부 못지않게 빡빡하였다.
홍콩의 국제학교들을 다니면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뭐니뭐니해도 발표였다. 특히 미국계 학교에서는 미리 정보를 조사해서 만드는 파워포인트 프레젠테이션 외에도 즉흥적으로 하는 토론, 발표 등이 정말 많았다. 평소에 남 앞에 나서기를 좋아하지 않았던 나는 발표하러 앞에 나가기만 하면 심장이 쿵쾅거리고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몇 마디 못하기도 하였다. 영어를 진짜 원어민들처럼 자유자재로 구사했다면 아마 발표도 훨씬 수월히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완벽하지 않은 영어 실력, 나의 편협한 사고력, 성격/성향상 스타일 등으로 인해 모든 발표란 나에게 커다란 짐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그러나 영어수업 시간의 발표가 계속되면서 나는 꾸준한 연습을 통해 내 생각을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고, 결국에는 선생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게 되었다. 연습하면 완벽해진다 했던가? 나의 꾸준한 노력과 연습이 나로 하여금 대본이 없이도, 대본을 외우지 않고도, 앞에 나가서 자신 있게 발표할 수 있게 해준 것이었다. 점점 변화하는 내 자신을 보면서 뿌듯하기도 하였다. 이 컬럼을 쓰는 현재 시점에는 오랫동안 발표를 안해보다 보니 다시 발표를 못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내 10학년 때의 영어 과목 선생님 M은 나의 9학년 영어 선생이기도 한 분이었다. 9학년 때 영어 수업 선생이 두 분이 있었는데 둘이 항상 같이 수업하신 건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매우 익숙했기 때문에 10학년 때 첫 수업이 시작하기 전부터 M은 나에 대해 웬만큼 꿰고 있었을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더욱 자연스럽고 친근하게 질문이나 상담 등을 할 수 있었고 M은 내가 질문할 때마다 항상 웃으며 대답도 하시고 충고도 해주셨다. 10학년 영어수업 때에는 모든 과제나 시험이 A, B 등의 성적이 아닌 Credit의 유무로 성적이 매겨졌다. 즉, 선생 마음에 드는 결과물을 제출하면 Credit을 받았고 그렇지 않으면 No Credit을 받았다. 하지만 이 시스템의 장점은, No Credit을 받은 대부분의 과제들을 일주일 내에 다시 제출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한국 학생들처럼 교육열이 매우 높은 경우에는 ‘그럼 당연히 전부 Credit을 받을 수 있는 것 아닌가?’의아해 할 것이다. 하지만 한번 No Credit을 받은 과제들은 Credit을 받게끔 선생들 마음에 쏙 들게 바꾸는 것이 정말 힘들었다. 이전 컬럼에서 언급했듯이 과제들은 에세이, 포스터, 창의력을 요하는 과제 등 정답이 없었기 때문에 아무리 일주일의 시간이 주어진들 Credit을 받는다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학기말에 한 학기동안 Credit을 최종적으로 몇 개 받았느냐에 따라 성적표에 뜰 문자 성적이 결정되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9학년 성적을 만회해야했던 나는 M이 있는 교무실로 거의 매일 찾아가서 상담과 조언을 구하곤 했다. 방과 후 헷갈리는 게 있을 때는 항상 이메일을 보내 정중히 물어보았고 M도 매번 답장을 보내주셨다. 충고와 조언을 들으러, 또는 Credit을 받을 수 있을지 여부에 대해 물어보려고 교무실에 정말 매일 들락날락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다시 할 수 없었던 프레젠테이션 발표 하나를 제외하고는 모든 과제 및 시험에서 Credit을 받게 되었고 결국 난생 처음으로 영어 수업에서 A-라는 우수한 성적을 받게 되었다. 모든 학생들이 나처럼 열정적이고 Credit에 안달 난 것은 아니었다. No Credit을 받고는 다시 하기 싫어서 ‘배째’라는 경우도 있었고 과제가 워낙 많다보니 먼저 다 하느라 No Credit을 받은 과제는 기억 속에서 사라지거나 시간제한을 넘기는 경우도 있었고 몇 번 다시 내긴 했어도 결국엔 No Credit으로 끝난 경우의 학생들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Credit을 받을 때까지는 세 번이건 열 번이건 계속 선생을 찾아뵈었고 결국 영어 수업의 대부분의 학생들보다 좋은 성적으로 그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새로운 학년이 되면서 공부가 훨씬 난이도 있고 분량도 많아졌기 때문에 수면 시간도 자연스럽게 점점 줄어들었다. 당시 나는 공부뿐만 아니라 악기 시험도 준비 중이었던 터라 악기 연습도 매일 해야 했기 때문에 취침 시간은 더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수면 부족은 학교에서 자주 조는 결과를 냈다. 영어 수업 때도 다 같이 영상을 볼 때 주체할 수 없는 졸음 때문에 꾸벅꾸벅 졸다가 M이 큰소리로 “Are you awake?”라고 물어보는 경우도 몇 번 있었고 급기야는 M이 부모님께 내가 수업 시간 때 자주 졸고 있다며 우려 섞인 메일을 보내기에 이르렀다. 부모님과 선생님들한테 꾸중을 들은 나는 그 후로 수업시간 때 졸리면 내 볼을 꼬집거나 반 뒤에 가서 서 있거나 하며 졸음을 쫓아버리려고 애썼다. 그 때는 해야 되는 게 워낙 많아 유독 더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것 같다.
- To be continu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