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중미 배낭여행] "여행의 기억" 1.멕시코 모렐리아
치카로카 | 2016.01.22 | 조회 1375





안녕하세요
. 해커스 지구촌특파원 게시판 연재를 시작하기로 결심한 치카로카입니다~ :))

여행기에는 '여행의 기억'이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사실 여행은 저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기억중 일부에요.

벌써 여행으로부터 돌아온 2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저에게는 생생한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

스무살에 캐나다에서 워킹홀리데이로 일년을 보낸 , 21살의 제가 오개월간 미국, 멕시코, 과테말라, 쿠바를 거쳐

여행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어요.

그동안 간직해 왔던 사진들과 기록들을 다시 꺼내보면서 저에게도 소중한 추억을 되새길수 있는 기회가 되고

여러분들도 재밌게 읽으시면 좋겠네요. ㅎㅎ

첫번째, 모렐리아 시티

일년간의 워홀을 끝내고 3주간 미국 캐나다 여행을 마치고 드디어 내려온 멕시코.

사실 멕시코에 대해서, 나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멕시코 여행을 계획한 이유는 태평양을 끼고있는 마을에서 야생거북이를 돌보는 워크캠프에 신청했기 때문이었다.

아름다운 모렐리아시티.

이때가 아마 도착 다음날이였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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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과달라하라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5.

공항은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공항과는 너무나 달랐다.

핸드폰 시계가 안맞아 몇시냐고 물어볼때도, 출구를 찾는데도 영어는 통하지 않았다.

쉽게 목적지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실상은 버스를 어디서 타는지 조차 물어보지 못해

바디랭귀지로 겨우 어떤 버스를 탔고, 노선도나 가격표도 없는 버스에서 처량하게 앉아있는 나를 본 어떤 아저씨의 도움으로 모렐리아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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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모렐리아에 처음 도착했을때, 나는 긴장해 있었다.

외국인은 전혀 보이지 않았고 내가 유일한 동양인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지나가는 순간마다 시선을 받았다.

멕시코 사람들의 강렬한 눈빛..(물론 나쁜게 아니라는건 알지만) 처음엔 너무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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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3 , 그러니까 2013년의 Navidad(크리스마스) Ano nuevo(새해) 맞이하던 모렐리아 시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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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모렐리아 시티에서 일주일을 보낸 것은 워크캠프를 시작하기 스페인어 수업을 들을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멕시코 워크캠프 사무실에서는 외국인들에게 스페인어 과외를 일주일 들을 있게 주었고,

수업이 모렐리아시티에서 이루어 졌다.

나는 개인 교사로 멕시코의 고등학교 교사인 Eduardo를 만났고, 그는 자신이 일하는 학교에 데려가 주기도 했다.

선생님 덕분에 약간은 긴장이 풀린 것 같았지만, 묵고 있던 숙소에서 일어난 일은 나를 다시 긴장하게 만들었다.




여행 비수기인지 (?) 너무나 조용하던 호스텔에는 나와 벨기에에서 Carolina만이 있었다.

Carolina는 멕시코에서 2달간 자원봉사를 하고 다음주에 집으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나는 사실 멕시코에 도착한 유일하게 영어를 쓰는 외국인이자 아주 친절한 언니가 너무 반가웠다.

하지만 그렇게 반가워 기뻐하던 것도 잠시였다.


우리가 처음 만난 , 샤워를 하러 들어간 언니가 소리를 지르면서 뛰쳐나왔다.

눈물을 흘리면서 나온 언니는 누군가가 자기를 보고 있었다고 말했고, 알고보니 호스텔에서 일하던 남자였다.

그렇게 한바탕의 소동을 보낸 , 우리는 그곳에서 그날 밤을 지낼 없다고 결정을 내렸고,

결국 열한시가 넘은 시각 배낭을 메고 호스텔을 나왔다.


다행히 괜찮은 숙소를 찾아 언니가 집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우리는 안전하게(?) 지낼 있었다.

"너를 만나서 정말 다행이야, 니가 없었다면 나는 정말정말 무서웠을거야."


나에게 일어난 일은 아니었지만, 안좋은 일에 무서워 눈물을 흘리는 언니를 보니 나도 울컥하더라.

우리는 그렇게 나흘만을 같이 보냈지만 언니가 떠나는 은 나는 큰 외로움을 느꼈다.

언니가 떠난 , 나는 밖에 나가면 해가 지기 전까지는 반드시 숙소로 돌아왔고, 멀리로 구경 가는 것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여기에 적어도 삼일은 더 있어야 하는데..



그러던 어느 , 페루에서 Olga 아줌마를 만났다.


올가 아줌마는 호탕했고, 친절했다.

6인실 도미토리, 옆쪽 침대를 쓰던 아줌마는 다리가 불편한지 절뚝거리며 걸었다.

밤까지 핸드폰을 보고 있던 나랑은 다르게 어두운 불빛에서도 안경을 쓰고 책을 읽었다.


나는 용기내어 아줌마에게 말을 걸었고, 아줌마는 쉴새없이 자신에 대해 얘기해 주고, 나에게도 많은 것을 물어보았다.

페루에서 태어나 캐나다인과 결혼을 캐나다에서 살았지만 이혼을 캘리포니아에 살면서 사회학자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자신은 캐나다 여권, 미국 여권 모두를 가지고 있다고 보여주기도 했다.

아줌마는 종종 중남미 여행을 자주 다닌다며 휴가차 멕시코로 여행을 왔다고 말했다.

다음날 우리는 같이 아침식사를 했고,

올가 아줌마는 도시 외곽 자그마한 마을에 가는데 같이가지 않겠냐고 물었고, 나는 당연히 아줌마를 따라 나섰다.

그렇게 우리는 Patzcuaro라는 마을로 향했다.


마을로 가는 , 코코넛 아저씨를 보고 저건 먹어야 한다며 택시에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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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에서의 코코넛

올가 아줌마랑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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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적응의 첫 단계였는지.. 저 코코넛 아저씨는 나랑 아줌마에게 각기 다른 돈을 받았다.

사실 나는 바보같이 얼마냐고 묻지도 않고 돈을 냈고, 그래서 아줌마보다 더 많은 돈을 낸 것이다.

아줌마는 그런 나를 보고 먼저 가격을 묻고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아주 당연한 사실을 깨우쳐 주었다.


', 여긴 멕시코고, 나는 못하는 외국인!'

그러면서 기본적으로 얼마냐고 묻는것, 그리고 숫자를 익히게 된 것 같다.







올가 아줌마.

좋은 카메라로 나를 계속 찍어주던 아줌마. 나는 폰카로 엉성하게 .







, 스무살의 .

여드름 투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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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착장에서 배를 기다리면서

유쾌하게 노래를 부른 뒤 쉬시던 Senor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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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tzcuaro 로 가는 배 안에서 만난 여인들 <3.
카메라를 향해 활짝 웃어줘서 이쁜 사진이 나왔다.
아, 그들은 스페인어를 쓰지 않고 다른 언어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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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Stanley가 떠올랐던 가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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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서 발견한 사이좋은 자매? 친구?




도시와 도시 사이를 이동하는 미니밴.

저땐 미니밴을 그렇게 많이 예상도 못했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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