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다+페스트 #336 세치니 다리의 모든 것
수스키 | 2015.11.28 | 조회 1868





안녕하세요 수스키입니다.

오늘은 제가 가장 인상깊게 보았던 세체니 다리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해요 :)


부다와 페스트의 다리 건설은 19세기 가장 위대한 헝가리인 중 하나였던 이스트반 세체니

(Istvan Szechenyi, 1791~1860)의 주도로 시작됩니다.



세체니 집안은 헝가리의 귀족 계급 중에서 둘째라면 서러워할 정도의 명문가 중 명문가로,

부와 명성, 탁월한 문화감각까지 함께 가졌던 집안이었답니다









그의 아버지 페렌츠(Ferenc)는 자신의 소장 유물과 서적을 국가에 기부해 헝가리 국립박물관과
세체니국립도서관의 실질적인 설립자가 되었기도 하지요.


어머니 율리아 페슈테티치(Júlia Festetics)가 일생동안 수집해 기부했던
기암괴석 역시 헝가리자연사박물관의 모태가 됩니다.


그리고 아들인 이스트반 세체니는 헝가리 학문의 전당인 헝가리학술원(MTA)의 설립자이자
진보적 경제관을 가졌던 민족주의의 상징적 인물이이기도 하지요.







여튼 본론으로 들어가서 그가 부다와 페스트 다리 건설에 나선 계기는 정작 따로 있다고 해요.


1820년 자신의 영지를 방문했다가 아버지의 부음을 받고 장례식 참석차 급히
돌아온 세체니는 다뉴브를 건너지 못했답니다..


부다와 페스트를 연결하는 배편이 기상 악화로 무려 8일간이나 두절되었기 때문이었다고.......
이에 격분한 세체니는 어떤 일이 있더라도 다리를 놓겠다는 결심을 굳혔다고 다짐합니다.






그는 명문가의 자손답게 자신의 1년 수입을 먼저 내놓고 다리 건설을 추진했지요.

이는 곧 국민운동으로 번졌고 다리 건설을 위해 국채가 발행되는 계기도 되었어요.


그는 당시 영국에서 다리 설계로 유럽에서 명성이 드높았던 윌리엄 T. 클라크(
William Tierney Clark, 1783~1852)에게 설계를 위촉했답니다. 현수교의 개척자였던 클라크는
런던 템즈강의 첫 번째 현수교인 해머스미스(Hammersmith)(1827년 완공)
비롯해 멀로(Marlow)(1932년 완공) 등을 설계한 인물이지요.


그래서 세체니 히드는 런던 해머스미스의 다리와 가장 비슷한 것으로 손꼽힙니다.





세체니는 또 스코틀랜드 출신 애덤 클라크(Adam Clark, 1811~1866)를 헝가리로 초빙했어요. .



애덤 클라크는 공사기간 내내 다리 완공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부다 왕궁이 있는 바르 헤지(Var-hegy) 아래를 뚫는 터널까지 설계했답니다.



그래서 헝가리인들은 부다 쪽 다리 입구의 광장을 '애덤 클라크 광장'이라 명명하여 지금까지 고마움을 나타내고 있어요



1842
년 다리 공사가 시작되긴 했지만 어려운 고비도 많았답니다.

완공을 코앞에 두고 벌어진 1848년부터 2년간의 대 오스트리아 독립전쟁 땐 파괴 일보직전까지 가기도 했어요.










전쟁이 완전 실패로 끝난 이듬해 11 21일 준공식이 열렸답니다. 부다와 페스트가 처음으로 한 도시가 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이기도 하지요



굉장히 어이없는 이야기도 있어요 이 다리 초입에는 사자 동상이 한 쌍씩 모두 네 마리가 안치되어 있는데


한 아이가 갑자기 "아니, 사자 입에 혀가 없잖아!"라며 고함을 질렀다고 합니다.





아이의 말에 너무도 자존심이 상한 조각가는 그만 그 자리에서 다뉴브강물에 뛰어들어 자살하고 말았다는 얘기가 전해오는데.. 사실이 아니겠지요? 그냥 사자상에 혀가 없는 것을 비꼬아 만든 스토리인듯 싶네요.













하도 이상한 소문이 꼬리를 물어서인지 후대 역사가들이 주의 깊게 조사까지 했는데,

문제의 조각가는 다뉴브에 몸을 던진 적도 없으며 행복하게 여생을 마감했다는 조사결과까지 나와 있답니다.

하하하하 역시 소문이지요.



더 웃긴 거는, 동물학자들까지 사자상을 면밀하게 조사했고 본래 사자 혀가 뒤쪽으로 치우쳐 있어 쉽게 볼 수 없다는,

조각가에게 꽤나 우호적인 유권해석까지 붙었지요. 참 별거 아닌 거 가지고 괜히 싸우는 거 보면 참 답답합니다.


이래저래 다리에 얽힌 설왕설래가 많긴 했던 모양이에요

[네이버 지식백과] 세체니 란치히드 (부다페스트-다뉴브의 진주, 2006. 6. 30., ㈜살림출판사)






세체니다리는 독립전쟁에선 살아남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의 공격엔 견디지 못해 일부 교량이 붕괴되고 말았어요.

워낙 중요한 다리라 전후에 곧바로 재건되었으며 부다페스트의 경관을 보여주는
가장 상징적인 조형물로 남아있어 지금까지 많은 관광객을 맞이 하고 있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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