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수스키입니다.
오늘은 제가 가장 인상깊게
보았던 세체니 다리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해요 :)
부다와 페스트의 다리 건설은 19세기 가장 위대한 헝가리인 중 하나였던 이스트반 세체니
(Istvan
Szechenyi, 1791~1860)의 주도로 시작됩니다.
세체니 집안은 헝가리의 귀족 계급 중에서 둘째라면 서러워할 정도의 명문가 중 명문가로,
부와 명성,
탁월한 문화감각까지 함께 가졌던 집안이었답니다

그의 아버지 페렌츠(Ferenc)는 자신의 소장 유물과 서적을 국가에 기부해 헝가리 국립박물관과

여튼 본론으로 들어가서 그가 부다와 페스트 다리 건설에 나선 계기는 정작 따로 있다고 해요.


세체니는 또 스코틀랜드 출신 애덤 클라크(Adam Clark, 1811~1866)를 헝가리로 초빙했어요. .
애덤 클라크는 공사기간 내내 다리 완공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부다 왕궁이 있는 바르 헤지(Var-hegy)
아래를 뚫는 터널까지 설계했답니다.
그래서 헝가리인들은 부다
쪽 다리 입구의 광장을 '애덤 클라크 광장'이라 명명하여
지금까지 고마움을 나타내고 있어요
1842년 다리 공사가 시작되긴 했지만 어려운
고비도 많았답니다.
완공을 코앞에 두고 벌어진 1848년부터 2년간의 대 오스트리아 독립전쟁 땐 파괴 일보직전까지 가기도 했어요.
전쟁이 완전 실패로 끝난 이듬해 11월 21일 준공식이 열렸답니다. 부다와 페스트가 처음으로 한 도시가 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이기도 하지요
굉장히 어이없는 이야기도 있어요 이 다리 초입에는 사자 동상이 한 쌍씩 모두 네 마리가 안치되어 있는데
한 아이가 갑자기 "아니, 사자 입에 혀가 없잖아!"라며 고함을 질렀다고 합니다.
아이의 말에 너무도 자존심이 상한 조각가는 그만 그 자리에서 다뉴브강물에 뛰어들어 자살하고 말았다는 얘기가 전해오는데.. 사실이 아니겠지요? 그냥 사자상에 혀가 없는 것을 비꼬아 만든 스토리인듯 싶네요.
하도 이상한 소문이 꼬리를 물어서인지 후대 역사가들이
주의 깊게 조사까지 했는데,
문제의 조각가는 다뉴브에 몸을 던진 적도 없으며 행복하게 여생을 마감했다는 조사결과까지 나와 있답니다.
하하하하 역시 소문이지요.
더 웃긴 거는, 동물학자들까지 사자상을 면밀하게 조사했고 본래 사자 혀가 뒤쪽으로 치우쳐 있어 쉽게 볼 수 없다는,
조각가에게 꽤나 우호적인 유권해석까지 붙었지요. 참 별거 아닌 거 가지고 괜히 싸우는 거 보면 참 답답합니다.
이래저래 다리에 얽힌 설왕설래가 많긴 했던 모양이에요
[네이버 지식백과] 세체니 란치히드 (부다페스트-다뉴브의 진주, 2006. 6. 30., ㈜살림출판사)
세체니다리는 독립전쟁에선 살아남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