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이트
  • 인강
  • 학원
● 발틱 3개국 여행기 #280 과거 러시아군의 기지
수스키 | 2015.09.13 | 조회 1926
안녕하세요 수스키입니다.
이번주는 정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사람이 사는게 아니였어요

너무 너무 힘이 들었다는.
일도 손에 안 잡히고..

제 힘듬은 3명이서 플랫을 구하게 된 것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아무도 내년 1월까지 살 3명에게 플랫을 주고 싶어하지 않더라구요

그렇죠. 그분들은 오래 오래 살 사람들이 좋지요

고로 많은 거절을 겪음

그리고 이 남자애가 마치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껴있는
남편처럼 행동을 하였지요.

다니엘의 친구인 에바는.

자기는 혼자살기 싫다. 난 너랑 살거다.

그러다 제가 끼고

세명이서 살수 있는 방이 없다보니

다니엘의 결론은 각자 방을 구하자라는 것.


하지만 제 촉으로는 에바는 다니엘이랑 살고 싶어하거든요

고로 그냥 제가 너네랑 같이 안산다하고 나왔습니다.
다니엘이 저 약간 피하는 것도 보이고 해서

이거 가지고 너무 스트레스 받기 싫어서 관뒀습니다.

분명 더 좋은 방도가 있을 거라고 저는 믿어요

이제 혼자 집을 잘 구해봐야겠지요

하지만 혼자 이렇게 방 문제가 생기면서..
정말 열명이 넘는 아이들이 저를 도와주려고 했어요

그래도 나름 1년 여기서 잘 살아왔구나.. 새삼 느끼게 되더라구요






탈린의 올드타운을 빠져나와 오래 걷습니다.

여행을 하면서 참 많이 걸었어요
특히나 제 친구들이 워낙 걷는 걸 좋아해서.

버스를 탄다는 건 말도 안되는 일.
발이 있는데 뭘 그리.






햇살 좋은 탈린을 걷습니다.

계속 북쪽으로 오면서 해도 더 짧아지고

시간도 바뀌고

뭔가 그 북유럽 특유의 우울함이 여기는 제대로 녹아있네요

아무리 햇살이 쨍쩅한 오후 12시가 되어도

뭔가 일요일 아침 이른 새벽같은 느낌이랄까

굉장히 안개가 자욱한 느낌.

햇살이 있지만, 추운 공기로 둘러 싸여진 이 느낌은
도시를 더 싸늘하게 만들기 딱 좋더라구요






이렇게 올트타운을 빠져나와서

저희가 보려고 했던 곳은

소비에트 연방 즉 러시아 군인들이 탈린을 점령했을때의
중심 거점 건물.

즉 소비에트의 대령이 거주하고 에스토니아 탈린을 뒤에서 조종하기 위해
세워진 건물이라고 할 수 있지요

과거에 탈린을 점령하면서 분명 이 주변의 최고의 건물
가장 삐까뻔쩍한 곳이었겠지만,

다시 탈린이 독립을 하고 나치 소비에트가 빠져나가면서

누구도 거들떠 보지 않는 버려진 곳이 되어버렸네요






거의 대부분이 불타 없어지고

이렇게 앙상한 뼈대만 남아있습니다.


나중에 이런 건물이 레스토랑이나 클럽으로
개조되겠지요

아니면 하나의 탈린의 역사의 한조각으로 남아
관광객들의 볼거리가 되거나.




소비에트 얘기를 하다보니 하나 흥미로운 이야기 거리를 좀

여기서 소개를 해도 되겠네요


소비에트 연방의 탈린에서 철수를 하는 사건이었지요

소비에트 연방은 자신들의 거주지에 모든 흔적을 지우고


1941년 8월 소련 점령하의 에스토니아 탈린에서 포위당한 발트 함대와 붉은 군대가 철수하는 작전엉ㅆ답니다.

독일군은 급속하게 소련 점령하의 발트 3국으로 진군했고 8월 말까지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은 독일군에 의해 포위당했으며, 발트 함대의 대부분 역시 탈린에 포위되었지요.


소련이 돌파구를 만들려는 동안, 크릭스마리네(Kriegsmarine)와 핀란드 해군은 1941년 8월 8일부터 라헤마(Lahemaa) 해안에 기뢰 부설을 시작했다고 해요.







소련해정은 호송선단 경로의 지뢰를 제거하려 했지만, 독일 해안에 포가 곶 근처에 배치되었고


핀란드 해군은 근처에서 고속 어뢰정이 초계를 섰고 동시에 독일 군대의 보트가 헬싱키 외곽에 집중되었다고해요


.

그리고 8월 19일에는 독일의 최종 공격이 시작되었고

1941년 8월 27일-28일 밤 동안 소련 10 소총병 군단은 적이 없는 동안 탈린의 선박에 탑승했답니다.


승선할 때에는 연기에 의해 보호받았지만, 피난이 시작되기 전의 소해 작업은 나쁜 날씨로 인해 효과가 없었고 선박 보호를 위한 소련군 비행기는 적었지요.


결국, 항구에서 피난하는 동안 독일의 강한 공중 폭격으로 천 명 이상이 사망했다고 해요.


그렇게 몇몇 살아남은 소련군이 러시아로 돌아갈 수 있었고


원래의 소련군이 거주했던 곳은 바로 이곳.


제일 본거지였다고 해요.



나치에게 쫓겨났을때 이 본거지는 거의 완전 소위말해 털렸다고 하지요.





그래도 이 건물을 바라보면 그때 그 시절의 위엄이 느껴진는 듯합니다,
분명 에스토니아인들에게는 잊고싶은 과거이여서
이렇게 아무도 오지않는 이곳에 덩그러니 놓여있는 것이겠지요.





뭔가 어찌보면 되게 끔찍해보이기지도 하지요

세계 2차대전의 승리국은 과거의 영광을 역사의 한획으로 보여질 수있지만,
이렇게 피해국은,

처참히 남아있게 되지요.

그냥 관광지도에

표시만 되어있을 정도.







이렇게 2차대전의 발자취를 찾아가는 여행은
그리 신나고 행복하지는 않습니다.

좀 더 심각한 그런 분위기..
약간 침묵으로 ..

그리고 거의 여행의 막바지이다 보니깐,

아이들이 많이 지치더라구요

저 역시.





얼굴에 피곤함이 역력하네요 ...
이떄는 거의 해탈의 경지였다는.

아픈 것을 넘어서는.

그래도 애들 따라 잘 돌아다녔던 것 같아요.

ㅎㅎㅎㅎ

이 건물에 대해 정보를 찾으려고 노력을 했었는데,

거의 남아있는게 없더라구요.

뭔가 기분이 이상합니다.
윗   글
 ● 발틱 3개국 여행기 #281 탈린의 맛집 !!!!!!!!!!!!유러피안 입맛에는 안성맞춤
아랫글
 독일 교환학생의 유럽여행♥ - 파리 3탄! - 몽마르뜨언덕, 방브벼룩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