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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냉정과 열정 사이 피렌체 #106 지금의 피렌체를 만든 메디치 가문. 그리고 메디치 궁.
수스키 | 2015.03.17 | 조회 2567

그리고 저는
메디치 박물관으로 향합니다.





피렌체가 예술과 미술의 중심지로서 나설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그 까닭을 정확하게 논하고자 한다면 우선 근대의 목전 15세기에 들어서자
피렌체에는 천재들이 점차 등장하기 시작했어요.

그 중심에 선 자들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등의 화가들과 단테, 마키아벨리와 같은 문학가들이지요




이들은 모두 다 피렌체가 자랑스러워할만한 르네상스의 거인들입니다.
그리고 이런 위대한 정신들의 뒤에는 든든한 후원자가 있었으니 그들은 바로 피렌체의 주군이었던 메디치 가문입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온 혈통과 소유하고있는 토지가 인간의 가치를 가르쳐주던 것이 중세시대였어요.

하지만 메디치 가문은 고귀하다고 자랑할만한 피가 흐르는 왕족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엄청난 영지를 지니고 있는 대영주인 것도 아니었어요
그러한 그들이 현대로 비교하자면 케네디나 록펠러도 비교하지 못할만큼의 권력을 유지하고
르네상스를 탄생시키는데 커다란 기여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며 또 그렇게 하고자 했던 목적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정부도 사업가도 쉽게 할 수 없었던 메디치의 후원들은 피렌체를 르네상스의 꽃으로 가득차게 합니다.







메디치 황금기를 만들어낸 장본인인 로렌조의 경우는

여러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천재들과 깊은 인연을 가지고 있다고 했지요.




우선 르네상스가 탄생시킨 최고의 천재 중 하나인 미켈란젤로와의 일화를 말씀드릴게요

바자리에 따르면 로렌조는 소년들에게 특정한 기능을 익힐 기회와 좀더 넓은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학교를 설립했지요.


그는 메디치 궁과 산 마르코 사이의 정원에 부지를 마련하고 오랜 친구이자

도나텔로의 제자인 베르톨도 디 지오반니를 선생으로 고용했으며

다양한 그림과 고대 흉상과 조각들을 학교의 화실과 야외에 세우도록 빌려주었습니다.










메디치 궁의 내부.
메디치 가문이 수백년 동안 모아놓은 작품들로 가득합니다.

얼마나 이 가문이 휘황찬란했고 엄청났는지 알 수 있는 이 궁전.










이곳에서 미켈란젤로는 늙은 목신의 두상을 본떠 작업하던 중 로렌조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고 해요

당시 소년이던 미켈란젤로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조각칼을 손에 쥐고 대리석 작업을 했음에도 목신상을 모방하는 솜씨가

너무나 빼어나 로렌조 역시 경탄을 금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미켈란젤로가 자신의 상상에 따라 목신의 입을 만들고

혀와 치아를 모두 조각하는 것을 보고 자만심을 없애고자 이렇게 말했어요


노인들의 치아가 완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모르느냐’고 말이죠.


로렌조가 이 말을 끝으로 자리를 뜨자 미켈란젤로는 치아 중 하나를 부숴버리고

잇몸을 파내서 마치 이가 빠진 것처럼 보이게 만들고는 로렌조가 다시 오자 그것을 보였어요


로렌조는 이 소년의 재능과 열정에 감탄했고 젊은 재능을 키워주고자 결심합니다.







그는 미켈란젤로의 부친에게 사람을 보내 그를 양자로 삼기를 청했고 이를 승낙받자 미켈란젤로에게 메디치 궁에

방 하나를 내주고 자신의 가문의 사람으로 여기고 돌봐주었어요


미켈란젤로는 메디치 궁에 4년 동안 머물러있는 동안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키울 수 있는 최고의 환경을 제공받으면서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는 대가로서 성장했던 것이지요


로렌조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도 인연을 맺었는데 그가 밀라노로 갔을 때 역시 그의 뒤를 봐주었어요.










빈치 출생의 사생아였던 레오나르도는 열두 살 무렵 피렌체에 있는

베로키오의 작업실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그 때 로렌조는 그의 조숙한 재능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습니다



결국 그는 레오나르도가 자신의 놀라운 재능의 나래를 활짝 펴기로 결심하던 차에

밀라노의 루도비코 스포르차 공작이 선친의 기마상을 조각할 예술가를 찾자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공작에게 레오나르도가 말의 머리를 본떠 만든 은제 수금을 보내면서 그를 추천했는데

이는 정치적인 목적 또한 가미된 일이었지요




로렌조 사후 2년 만에 피렌체에서 추방된 메디치 가문은 레오 10세의 등극으로 다

시 권력의 정점에 올라서면서 르네상스 예술과의 인연을 이어나가게 되었답니다.









이런 예술계의 거장도 다 뒤에서 후원해준 사람이 있엇기에
특별히 클 수 있었지요.


그림 하나하나의 설명은 이미 우피치 미술관에서 많이 했기에
이 편에서는 이 메디치 가문에 해나 백그라운드를 설명해드립니다.

그러면 이 모든 아름답고 빛나는 그림들의 이유를 아시게 되시겠지요









하하 나름 사진도 참 많이 찍었는데
설명하고 싶지만.. 다 까먹었어요 그렇다고 인터넷에
정보가 나와있는 것도 아니라서.


그리고 대부분 정말 종교화 아니면 신화의 그림입니다.

헤라클레스의 승리, 제우스의 바람, 헤라의 질투
이런 주제의 그림들이 대부분이지요.













정말 대단한 가문이구나를 새삼 느끼게 된 벽.
그림을 정말 사랑하고 지키고 싶었던 가문인 거 같아요

이로서 지금의 피렌체가 탄생했겠죠 ?

정말 감사해야할 가문.





(참조; http://mahan.wonkwang.ac.kr/nonmun/2006non/16.htm)



하나하나 다 살펴보려고 노력하지만 정말 그 수많은 그림에
그저 감상하기만 합니다




눈을 엄청 호강시키고, 또 다시 피렌체의 밤거리로 나갑니다.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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