캔사스 거라지 세일 이야기
우물 | 2010.05.27 | 조회 2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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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24일 월요일, 날씨 : 천둥번개소리에 잠이 깸. 그러더니 갑자기 맑음.

 

와이프가 돈을 벌기 시작하자

갑자기 어깨가 쑤신다고만 해도 막 주물러줘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거실에서는 안 아프던 어깨가 왜 내 옆에만 오면 갑자기 아픈걸까?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는 손톱깎이를 왜 설거지하고 있는 나에게 갖다달라고 하는 걸까?

'아..몰랐어.. 미안' 이라고 말하는 아내에게 난 왜 더 이상 뭐라고 할 수 없는걸까?

 

요즘따라 이상하게 설거지가 쌓여있는 걸 참을 수가 없다.

어느덧 찌개 끓여놓고 와이프 데리러 가는 것이 삶의 낡이 되어버렸다.

가끔씩 다시다 가루 대신 멸치와 다시마로 국물내는 것이 A맞은 것보다 더 뿌듯하게 느껴진다.

 

나도 뭐라도 보탬이 되고자 이것저것 잡일을 하고는 있지만

와이프가 벌어오는 돈에 비하면..용돈 수준..

여름 학기를 앞두고 집에서 쉬고 있는 나로선 살림이 주 업무다.

 

그런데 살림이 너무 힘들다.

틈틈히 영어 공부를 더 하려고 계획하고 있지만

영어 공부는 무슨..설거지에..청소에 빨래에..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다.

 

우리 집에서 살림을 맡고 있다보니

아무래도 거라지 세일에 눈이 많이 간다.

애석하게도 아직도 우리집엔 식탁이 없다.

오순도순 밥상에 앉아서 밥을 먹긴 하지만 슬슬 힘에 부친다.

 

요즘 거라지 세일 기간이니만큼

오늘.. 맘 먹고 식탁을 찾아 나선다.

원하는 식탁을 반드시 사고 말리라.

 

와이프는 쓸데없는 것만 잔뜩 사오면 가만두지 않겠노라고 엄포를 놓는다.

어디서 샀는지 환불할 수 있게 주소도 꼭 알아놓으란다. 췟.

 

거라지 세일 장소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뭐 한 주택가만 들어서면 다음과 같은 표지판은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풍선을 매달아놓은 집이 있어 뭔가 주인 아줌마가 센스가 있겠다 싶었다.

 

 

오.. 나름 주차되어 있는 차도 많이 있다.

손님들도 여럿 보이는 듯 하다.

 

쓰다 남은 옷들이며 구두같은 것들을 가지런히 정리해 놓았다.

사진에 보이는 것들 대부분 1달러, 비싸야 5달러를 넘기지 않는다.

 

전체적으로 아기 용품이 많은 것 같았다.

진열되어 있는 옷들은 전부 아기 옷들..

개당 1달러 혹은 2달러에 팔고 있다.

남이 입던 옷을 입히는 것을 개의치않는 부모님들은 말 그대로 대박.

미국은 아기옷이 한국처럼 비싸지는 않지만 그렇게 싸지도 않다.

나도 나중에 애기 낳으면 이런데서 좋은 것 골라다 입혀야지.

 

옆에 주인집 아들로 보이는 꼬마아이가 자전거를 끌고 다니며 막 뭐라고 하는데

미안하구나, 꼬마야. 당췌 뭐라는지 모르겠구나..

어른말도 알아듣기 힘든데 난 도무지 애들이 하는 영어는..ㅠ.ㅠ

 

옷 다음으로 많은 것이 컵이나 접시, 쟁반 같은 부엌 용품.

결혼할 때 가지고 온 것들인데 거의 쓰지 않은 것들이란다.

그런데도 개당 싸게는 50센트에 내놓은 것도 있다.

오른쪽에 보이는 액자들도 대부분 2~3달러.

 

참고로 미국은 집에 원래 구비되어 있는 전등을 모조리 켜도 그리 밝지 않다.

그래서 사진에 보이는 등 같은 것들을 집마다 2~3개씩 비치해 두곤 한다.

싼 물건만 모아놓는다는 월마트에서도 저 정도의 등들은 20~30불 정도 하는데

이곳에서는 제일 큰 것이 10불 나머지는 모두 5불.

외모상으로는 새것과 그리 큰 차이를 못 느끼겠다.  

 

아니, 어떻게 이런 물건이 이 가격에???

연신 놀라움을 금치 못하다 결국 시계와 등을 사 버렸다.

 

 

 

 

(아..등을 찍는다는게 아내가 나와버렸다.

지난번 졸업식 사진때도 자기 뒤통수 나왔다고 그렇게 뭐라하더니

자는 모습을 보면 뭐라고 할까?

사진 다시 찍기도 너무 힘든데..

에라 모르겠다.)

 

다음 집으로 향했다.

 

 

이제 막 오픈한 집이다.

아직 진열이 덜 끝나보였다.

거동조차 불편하신 할머님 한 분이 혼자 계셨다.

할머님이시라 그런지 아주 알뜰하고 정리가 잘 되어 있었다.

 

 

 할머니 소싯적 입으시던 옷들($2~3)

 

 

할머님 읽으시던 책($1)

 

 

또 다른 옷들($3~5)

 

 

할머니 애기 옷들($1~5) 응????????????????????????????

 

 

악세사리와 기타 잡품들..($1~3)

 

가방($5~10)

 

기타 용품($0.25~1)

쓰던 부엌 용품까지 파시는 대단한 할머니..

 

그 외 장식용품($3~5)

 

할머니께 혹시 식탁은 없나 여쭤보았다.

좋은 것이 있다며 창고 다른 구석에 있는 식탁을 보여주셨다.

가격은 25불.

좀 작은 2인용 식탁이다.

거라지 세일에서 파는 품목 중 가장 비싼 것이 아닌가 싶었다.

살까? 말까? 살까? 말까?

수십번 고민한 끝에 일딴 사진만 찍어가기로 했다.

 

할머님..힘들게 창고에 이것저것 치워주셨는데 안 산다고 막 뭐라고 하신다.

이날 처음으로 영어로 된 욕을 들어봤다.

역시나 국적을 초월해서 할머님들은 거침없으시다.  

 

집에 와서 아니에게 사진을 보여주니 우리둘만 밥먹고 사냐고 하신다.

집에 사람들은 초대 안하냐고..

아하.. 역시 우리 와느님..

 

만약 이 식탁을 집에 사들고 왔으면

우리 와이프와 그 거침없는 할머님의 환불을 두고 불꽃튀는 대결을 구경할 수 있었는데..아..아쉽다.

그리고 난..이미..그 전에.......큭! 상상하기도 싫다.

이래저래 안 사길 잘한 것 같다.

 

집에 돌아와보니 문득 양손에 무거운 것들이 들려있었다.

아뿔싸..나도 모르게 한가득 또 실어왔구나..

내가 왜 그랬지..

 

이제 와이프한테 혼날 일만 남았다.

와이프를 모시고 집에 가는 도중..

정말 쓸모 있어보이는 것들 몇가지가 있어 샀다고 실토했다.

와이프 일단 집에가서 보자고 한다.

 

먼저 자랑스럽게 꺼낸 이 시계($1)

 

다행히 와이프께서 화장실에 걸어놓으면 좋겠다고 하신다.

오 예스! 얼른 건전지를 끼우고 화장실에 걸었는데

아뿔싸..초침이 계속 한 자리만 맴돈다..

고장난 시계를 사온 것이다.

갑자기 식은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좌변기에 주저 앉아

건전지를 뺐다 꼈다 하기만 수십번,

이래저래 툭툭 쳐보기도 하고

이리저리 시간을 돌려보기도 하던 찰나..

(훗..자신이 밟은 지뢰를 처리하는 병사의 심정이 이럴까..)

갑자기 뒤에서 싸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뭐야?? 고장난 거야!!!

 그러게 건전지를 가지고 가서 고장났나 확인하고 사와야지!!!!!!!!!!!!!!!!!!!!!!!!!!!"

불호령이 떨어진다.

 

"아니..나는..미국인..들은..정직하..안줄.. 알았..으..니까..미안해....."

 

집에서 설거지를 하다보면 시간이 몇시쯤 됐나 궁금할 때가 많다.

그런데 거실에는 보통 시계를 놓지 않기에 다음과 같은 탁상 시계를 하나 샀다.

싱크대 위에 올려놓으려고.

 

건전지를 넣으려고 뒷덮개를 여는 순간.

어렵쇼. 건전지 넣는데가 없다.

알고보니 태엽으로 가는 시계.

갑자기 미소가..^^

 

당장 아내에게 달려가

"이거봐바. 이건 건전지도 필요 없는 거야.

태엽만 감아주면 건전지 값 없이 평생 쓸수 있는 거라고~나 잘했지??ㅋㅋ"

 

그러자 아내 시계를 가로채더니 태엽을 감아본다.

한 10바퀴 정도 감아주자 시계가 돌아가기 시작하는데

어라!! 소리가 이상했다.

 

다른 것은 소리가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찰칵!       이렇게 난다면

 

이건

찰칵!찰칵!찰칵!찰칵!찰칵!찰칵!찰칵!찰칵!찰칵!찰칵!찰칵!찰칵!찰칵!찰칵!

 

영화에 나오는 폭탄 소리가 난다.

와이프 다시 한 번 니.까.짓.게 이런 눈빛으로 날 쳐다본다.

 

그래도 뭐 좋은 점은 있다.

공부할 때 옆에 놓으니 쉽게 잠이 들지 않는다.

늘 나를 긴장하게 하는 시계..

문제는 공부도 안된다는 거..

 

아침에 늦잠자는 아내 옆에도 조용히 이 시계를 갖다 놓으니

긴장이 되던지 이내 일어나 나를 째려보며 화장실로 향한다.

 

아무튼 앞으로 물건을 살 때는 꼼꼼히 확인하는 습관을 길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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