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르도에서 전해드립니다_크로와상] #23. 프랑스 고성방문 chateaux de vincennes
크로와상 | 2021.11.14 | 조회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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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크로와상입니다! 저는 지금 파리에서 보르도로 가는 기차 안이에요!

오늘은 어제 방문했던 chateaux de vincennes 방센느 성에 대해 소개해드려고 합니다.

방센느는 파리 근교에 위치하고, 메트로 1호선을 타고 금방 갈 수 있어요. 먼저 방센느 성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자면,

Château de Vincennes(프랑스어 발음: [ʃɑto d(ə) vɛ̃sɛn])는 뱅센 숲(Bois de Vincennes) 옆 파리의 동쪽 가장자리에 있는 뱅센(Vincennes) 마을의 옛 요새이자 왕가 거주지였습니다.

1361년에서 1369년 사이에 크게 지어졌으며 14세기에서 16세기에 프랑스 왕의 시테 궁전 이후 선호되는 거주지였습니다.

특히 14세기에 지어진 유럽에서 가장 높은 요새화된 중앙 타워인 "donjon" 또는 성채와 1379년에 시작되었지만

1552 년에 완공된 채플인 Sainte-Chapelle de Vincennes로 유명합니다.


화려한 고딕 건축의 예외적인 예. 요새화로 인해 성은 곤경에 처했을 때 왕의 성역으로 자주 사용되었으며

나중에는 감옥과 군사 본부로 사용되었습니다. 예배당은 1853년에 역사적인 기념물로 지정되었습니다.


먼저 donjon과 샤플 안에 방문하기 위해서는 표를 사야해요.

티켓은 9.5유로지만, 저는 여권을 보여주고 무료입자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마 25세 이하는 무료입장이 될거에요!




donjon 내부에 올라가면 기다란 복도들이 계속 나와요.

그리고 복도들에 창문들이 늘어져 있답니다.

그 창들로 보이는 풍경이에요


앞에 보이는 건물이 채플이랍니다.


최초의 왕실 거주지는 1178년 루이 7세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해요. 숲으로 둘러싸여 사냥하기 좋은 위치였고, marne 강과 seine 강과 가까워 로마와도 접근하기 좋았다고 해요. 루이 7세와 그의 후계자에 의해 가끔 사용되었지만 루이 9세, 생루이는 더 자주 사용 했다고 합니다. 그는 왕실 회의를 그곳에서 열었고, 왕비와 그의 아이들이 종종 이곳에 살았고


필립3세 (1274년)와 필립 4세(1284년)은 각각 그곳에서 결혼 했으며

14세기 왕인 루이 10세, 필립 5세, 샤를 4세가 이곳에서 사망했다고 합니다.

당시 거주지는 현재 성벽의 북동쪽 모서리에 위치한 4개의 날개가 있는 거대한 저택이었습니다



샤또 내부는 아니지만 동종 내부 창으로 들여다 본 바깥이에요.

동종에 있으면 안은 여전히 15세기 즈음 같은데 바깥은 21세기이니 괜히 기분이 이상합니다 ㅎㅎ





14세기에는 장 2세와 샤를르 5세의 요새로 쓰였습니다.

백년 전쟁에서 프랑스 군의 패배와 영국군에 의한 왕의 함락, 왕위에 대항한 농촌 봉기, 등으로 새로운 왕이었던

장2세 때, 파리 중심부가 아닌 가까운 곳에 더 안전한 거주지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었고,

이 때 뱅센에 52미터 높이의 거대한 성채를 짓도록 하였습니다. 1369년에 완공되었을 당시, 유럽에서 가장 높은 요새 건물이었다고 하네요.



루이 14세가 더 큰 규모로 확장을 했고, 프랑스 고전 스타일의 새 거주지는 1658년에 완공되었으며

루이 13세의 거주지의 두 배 크기 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1682년 루이 14세는 왕실을 베르사유 궁으로 옮겼고, 1751년 루이 15세는 베르사유에서 통치를 시작했습니다.

이후 샤또 드 뱅센은 가끔 사냥을 하기 위한 장소로 전락했다고 하네요.


18세기 초 왕실이 떠난 후 샤토를 일종의 pre industrial 공원으로 만들려는 노력이 있었습니다.

1740년 왕실 도자기 제조소가 문을 열었지만, 1756년 더 큰 공간으로 이전했고,

1777년부터 1784년까지 가끔 경마장으로 사용되기도 하엿고, 1784년에 왕은 대부분의 건물을 매각하려고 했지만 프랑스의 혁명으로 중단되었습니다. 이후 사토는 군사기지와 감옥으로 변모하게 됩니다.



프랑스 혁명 이전에 약명높은 죄수들이 샤토에 수감되어 있었습니다.

초기 죄수들 중에서는 미래의 앙리 5세와 앙리2세 드 콩데, 루이 14세의 재무장관 니콜라 푸케 그리고 작가 디드로 등이 있었고 유명한 사기꾼 장 앙리 라튀는 뱅센느에서 두 번, 바스티유에서 한 번 탈출했다고 하네요 ㅋㅋㅋ. 1784년 왕실 사법 제도의 남용과 재판 없이 포로를 가두는 관행이 폭로된 후 감옥으로의 사용은 중단되었다고 합니다.


벽에 낙서들이 많은데 이 낙서들은 거의 죄수들에 의해 그려진 것이라고 합니다. 자세히 보면 년도도 적혀있고,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400년이 지나도 꽤나 선명히 남아있어 신기했어요








프랑스 혁명 이후 이 성은 억압의 상징으로 비난을 받았지만,

나폴레옹1세가 신전 감옥이 마리 앙투아네트의 왕당파 신전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신전 감옥을 철거하였는데

이후 신전감옥에서 이송된 죄수를 수용하기 위해 다시 사용했다고 해요.

나폴레옹 통치 기간동안 샤토와 건물은 군대 무기고로 사용하기 위해 상당한 재건을 건쳤고,

새로운 나무 바닥으로 생트 샤펠을 상층과 하층으로 나누고 군수창고로 탈바꿈 했다고 합니다.





19세기 왕정복고와 7월 군주제 동안 샤토와 공원은 군대, 특히 포병에 의해 사용되었습니다.

1826년 포병학교가 문을 열었고, 주변 공원은 군사훈련과 사격장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샤또 드 방센 근처에 여전히 큰 군사기지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나폴레옹3세 치하에서 방센느의 채플은 역사적인 랜드마크로 지정되었고, 1854년 예배당 복원이 시작되었어요. 복원 후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었다고 하네요.


상당히 역사가 깊고 의미있는 성인데,

파리 외곽에 위치해서 그런지 우리나라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 아쉽더라구요. 저는 프랑스인 친구 덕에 알게 되어 다녀와서 개인적으로는 정말 만족스러웠습니다. 파리에 가시는 분들, 여유가 있으시면 chateaux de vincennes 도 한 번 방문해보시는 것도 좋을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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