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어 이름은 루시. 나의 성을 붙여 루시 전 이라고도 한다.
동양 헐리웃 배우인 루시 리우 덕분에 나의 이름은 외국 아이들에게 쉽사리 접근할 수 있었다.
나의 전공은 영어와 신문방송학.
난 작년 이맘때쯤 스웨덴에서 한 창 파티를 꽤나 즐기고 있었다.
고등학교 때 부터 외국 대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에 대단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던 지라,
1년동안 북유럽 스웨덴으로 교환학생을 가게 된 나는 작년 이 맘때쯤 한 창 설렘의 극을 달리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바쁜 일상에서 1년동안의 그 곳에서 잠재웠던 나의 파티실력을 자유롭게 뿜어낼 수 있었던
아름다운 그 시절이 있었기에 아마 지금 견딜 수 있는 것 같다.
난 2007년 8월 부터 2008년 6월까지 한국에서 비행으로 20시간 남짓 걸리는 북유럽 스웨덴에
발을 디뎌 약 1년이란 시간동안 아름답게 정착했다.
내가 공부하는 곳은 스웨덴의 수도인 스톡홀름에서 남부 쪽에 위치한 jonkoping(욘쇼핑) 에 있는
jonkoping university 이다.
우리 학교는 약 500명의 교환학생이 있다. 거의 대 부분의 아이들이 유럽 아이들이라 스웨덴에서 스웨
덴의 대학문화와 스웨덴 아이들의 성격들을 잘 알 수 있었던 반면, 예상치도 못하게 1년이란 시간동안
난 과감하게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체코 등 유럽에서 온 각기의 아이들을 구분짓고 평가내릴 수 있게 되었다.
jonkoping univerisity 빨간 건물은 도서관이다.
처음 도착한 날이 아직도 생생하다.
2007년 8월 18일
"your building is here." 공항에 픽업하러 나오신 욘쇼핑 대학교 (앞으로 1년간 내가 공부하게
될 스웨덴의 욘쇼핑 지역에 있는 대학교) 의 픽업담당 아저씨는 안전하게 나를 92동 앞에 내려
주시곤 방 키만 고스란히 내 손에 얹져 주시며 저 말만 남긴 채 쓩 하고 떠나버리셨다.
와. 정말 이제부터 시작이구나. 꺄오. 설렘 30% 떨림 20% 기대감 50%
충만했다. 난 100 퍼센트로 충만해진 루시 전이었다. 적어도 엘리베이터 문을 열기 전 까진
말이다.
'분명 우리 나라에선. 어떤 빌딩을 가도. 아니 청담동의 럭셔리한 빌딩을 가도
버튼을 누르면 '띵' 하며 엘리베이터 문이 내 앞에서 자동으로 열리는데. 도무지 내가 버튼을
눌렀는데도 문이 열릴 생각을 않는다. 어머, 고장인가. 뭔가. 나 병신인가? 분명 엘리베이터가
내려온 것은 같은데 그리고 불이 켜져 있는데 어떻게 문을 여는지 모르겠다.
내 플랫은 3층인데 난 지금 37키로의 짐들과 싸우고 있다. 나 왜이래?
엉거주춤하고 있는 사이, 키가 2m 는 당연시 넘을 것 같은 꼬불꼬불 머리의 멕시코 남자애가
내 옆으로 오더니 악수를 청하며 씨익 웃으면서 "엘리베이터 문을 밀면 돼" 라고 말했다.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난 애써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하? 고마워 나. . 오늘왔거든. 하하하하"
부끄러워도 내 볼은 절대 발개지는 법이 없다. 왜. 뽀얀 피부에 부끄러워지면 얼굴 발개지는
여자애들 보면 한국 남자애들 쓰러지잖아. 난 뽀얀 피부도 절대 아닌데에다 소주 2병을 마셔도
얼굴색 하나 끄떡없는. 아무리 부끄러워도 그리 보여질 수 없는. 철판 강해 보이는
참 어찌 보면 안타까운 루시 전이기에. 도무지 아까와 같은 엘리베이터 사건에서
" 이런 실수 쯤은 아마 귀엽게 봐주지 않았을까?" 라고 합리화 시키기엔 약간의 무리가 있었다.
3층에서 내리자 2개의 문이 보였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아파트 문 대문 앞에
3개의 네임 테그가 붙여져 있었다. 그곳에서 발견한 자랑스런 내 이름! JEON KYUNG ROK
와우! 왔구나. 왔어.
난 앞으로 한 학기 중 6개월 동안 나의 사랑스러운 프랑스 룸메와 중국 룸메와 손 발 꿍짝이면서
지낼 것이다.
그 첫 날의 가슴 벅차오를 설렘은 1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느낌만은 생생하다.
해커스 특파원이 되면 지난 1년동안 복지국가라는 스웨덴이라는 나라의 명분 뒤에 감춰진
진실된 스웨덴의 모습과 유럽 각국 나라의 아이들 스토리 그리고 내가 경험한 모든 유럽파티 문화
와 유럽에서의 대학 생활 등 모두를 재미있게 일화로 연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