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이야기는 역시 계획에 없던 것인데요. 제가 듣는 수업 중의 하나인 "Australia and Global Economy" 라는 강의 도중에 있었던 일을 잠시 전하려고 합니다. 아무래도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릴 것 같아서 생각난 김에 호주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지나가는 이야기로 잠시 전하고자 합니다.
우선 이 수업은 숫자와 수식이 많이 등장하는 수업이 아니다보니 아시아계 학생들은 손에 꼽을만큼 밖에 없고, 대다수가 호주 현지 학생들인데요. 시험이나 과제물에서 영어로 글을 써야 하는 것이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기도 합니다. 튜토리얼에서도 학생들의 열띤 토론의 장에서 혼자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이 좀 난감하기도 하고요..
선생님은 미국에서 살다가 호주로 오신 분인데, 그래서인지 수업 시간에 미국의 이야기를 많이 하시고 호주와 비교를 많이 하시는 편입니다. 덕분에 조금 객관적으로 호주 경제 상황을 설명하시는 것 같기도 해서 좋은 것 같기도 하고요.
우선 호주는 현재 1인당 GDP가 세계 20위 정도라는군요. US 달러 대비 호주 달러가 폭락을 해서 이 순위가 올해도 유지될 지는 잘 모르겠는데요. 아마도 우리 나라가 이로 인한 피해는 더 클 듯하군요.
호주의 인구는 전 세계 인구의 약 0.3%, 호주의 GDP는 전세계 GDP의 약 1.1%라고 합니다. 인구 대비 상당한 수준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1.1%는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미미하다는 것이 호주인 선생님의 설명입니다. 그래서 국제 무역 시장에서 가격수용자가 될 수 밖에 없다는..
어떤 호주 학생이 이 사실이 못마땅한 듯 미국의 경우를 물었습니다. (미국에서는 호주를 어떻게 생각할 지 모르겠지만, 그다지 호주인들은 미국을 상당히 의식을 하는 듯합니다.) 그래서 나온 답은 미국은 세계 인구의 약 5% 이내, 그러나 GDP는 약 26%라고 수업에 참여했던 튜터가 답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학생은 입을 씰쭉이면서 실망스러운 표정을 짓더군요. 제가 접한 많은 호주인들은 자신들이 "Australian" 이라는 사실과 "Australia" 라는 자신의 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굉장합니다.
사실 제가 이 곳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호주" 라는 것에 대해서 아는 것은 쇠고기와 양털 뿐이었지요. 원자재가 좀 많다는 것과.. 농업 및 축산업, 그리고 광업 외에는 별다른 산업이 없고, 2차 산업은 거의 없다시피하고, 1차와 3차 산업으로 이루어진 나라지요. 그렇다고 3차 산업 업체들이 세계적으로 널리 퍼진 대형 기업이 있는 것도 아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주인들은 자국 경제에 대해서 과신으로 보일 정도로 상당한 신뢰를 가지고 있고, 영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이 수업에서 중국은 값싼 노동력으로 대표되는 국가로 자주 언급이 되며, 일본 또한 자주 등장을 하는데 한국은 아직 등장을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서양 학자들이 한국 경제를 바라보는 시각일까요? 자료를 찾아보니 한국은 2007년에 GDP규모로 전체 13위를 했더군요. (호주를 앞질렀지요) 무역량도 아마 비슷한 순위가 아닐까 싶습니다만, 이런 면에서 보면 경제 규모가 크지만,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평가되는 대한민국이 많이 아쉽다는 생각이 듭니다. 반도체 등을 비롯한 IT, 전자제품과 조선, 자동차 등에서는 세계적인 규모와 명성을 가지고 있음에도 "대한민국" 이라는 국가브랜드는 여전히 저 밑에 있어서 안타깝지요. 주변국이 워낙 강해서일까요? 참고로 일본이 2위, 중국이 4위를 했더군요.
선생님이 이전 수업에서 호주 경제의 문제점으로 과도한 임금을 지적한 적이 있는데요. 맥도날드에서 일할 때 미국에서도 그만한 시급을 주지 않는다면서, 호주 학생들이 일을 하면서 돈을 조금 받는다고 투덜거리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워킹홀리데이로 호주를 찾기도 하고, 학생들도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지만 비상식적인 임금이 지급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최저 임금이 주별로 다르지만 대략 $15 / ph 정도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요. 한 시간 일하면 한 끼를 제대로 먹을 수 있는 엄청난 금액이 지불이 되는 것이지요.
어느 나라에서도 패스트푸드점에서 한 시간 일해서 그만큼의 수입을 올릴 수는 없겠지요. 호주의 산업이 아시아 국가들에 비하여 뒤떨어져 있다고 느껴지지만 GDP를 올리는 요인 중의 하나가 아닐까 조심스레 생각을 해봅니다.
어쨌든 이런 연유로 서호주 연안에서 잡은 게를 동남아시아로 보내서 가공하여 다시 수입하는 일이 생기기도 한답니다. 호주의 임금이 워낙 비싸서 가공을 하자면 인건비가 왕복 물류비+현지 인건비를 초과하기 때문이라나요. 예전에 어떤 책에서 읽은 바로는 멜버른에서 퍼스까지 캔을 운반하는데 드는 비용이 영국에서 퍼스까지 싣고오는 비용보다 비싸다고 할 정도로 호주의 인건비가 무시무시하답니다.
예전에도 느꼈던 것이지만 우리 나라와 호주의 가장 큰 차이는 단순 노동직의 급여 차이가 아닌가 싶습니다. 한국에서 학교를 다닐 때 용역 회사에 고용되어 일하시는 청소부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월급 70만원 남짓을 받는다고 했는데 시급으로 계산하자면 4,000원 정도 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러나 호주에서는 청소를 해도 시간당 $15, 원화로 14,000원 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지요. 이러한 것은 호주인들이 고등 교육을 회피하는 원인 중의 하나라고도 하는데요. 한국에서 종일 일해서 벌 돈을 여기서는 두 세 시간이면 되니 말이지요.
선생님 왈, "돈 많이 받고, 여가 시간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곳이 호주다. 가장 높은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는 곳에서 사는 것을 행복하게 여겨라."
부럽기도 하면서, 과연 대한민국은 언제 "삶의 질" 에서 호주나 다른 선진국을 따라잡을 수 있을 지 생각해보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4월에는 한국에 봄이 와서 예쁜 꽃들이 피겠군요. 여기 올 때 앙상한 가지만 보이던 뒷산도 푸르게 변해갈 것 같군요. 환절기 감기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