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의 달콤함을 숙제의 지겨움으로 바꾼 것도 모자라 여전히 숙제에 치여서 살면서
수강신청을 무리하게 한 것 같아 후회가 되기도 하고,
멍청하면 더 시간을 들이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지난 학기에는 학교에 걸어다니겠다는 열망으로 시티의 끝자락에 집을 얻어 살아서
버스를 탈 기회는 고작 너댓 번에 불과했습니다.
식기류 사러 IKEA에 한 번 갔다 올 때와 공항에 다녀올 때, 그리고 친구와 글레넬 갔다올 때가 전부였지요.
그런데 이번 학기에는 시티에서 벗어난 지역에 살다보니 매일 버스를 타고 통학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사는 동네의 이름은 Paradise.
이름이 참 좋지요. ㅎㅎ
지금 사는 Sweet Home과 참 어울리는 지명이 아닌가 싶어요.
오늘은 학교 끝나고 와서 주인 형님 부부의 돌판구입기념으로 삽겹살을 먹었다죠.
집에서 도보로 약 35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Paradise Interchange라는 정류장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학교가 있는 시티로 가는 버스가 자주 있지만 여기까지 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죠.
일단 이 35분이 호주인처럼 넓은 보폭에 빠른 피치를 올려 걸어야 가능하다는 것과
올빼미족답게 밤에는 팔팔하지만 아침에는 잠에서 덜 깨어 몸이 말을 듣지 않기에 조금 어렵습니다.
다행히 집에서 약 7분 정도 거리에 가까운 정류장이 있어 주로 여기서 버스를 타고
Paradise Interchange까지 가서 버스를 갈아타고 가게 됩니다.
시간을 잘 맞추어 버스를 타면 30분 안에 학교에 가게 되지요.
집 앞을 다니는 버스는 역시 시티로 향하지만 엄한 길을 잡아 돌고 돌고 돌아서 가느라 1시간 가까이 걸린다죠.
(어쩌다 시간 여유가 있으면 갈아타지 않아도 되는 이 버스를 탑니다만 너무 돌아서 멀미가 나기도 합니다.)
자.. 여기서 개인적인 이야기는 생략하고
오늘의 이야기는 세계에서 가장 길고 빠른 Guided Busway라는 Adelaide O-Bahn 입니다.
Busway는 버스만 달린다는 버스전용도로지요.
예전 글에서 브리즈번의 버스웨이를 한 번 소개한 적도 있고,
jhcyonsei님도 역시 학생증 사진도 올리시면서 소개를 하신 것으로 기억을 합니다.
이것이 애들레이드 오~반.
(노선도 : 애들레이드 메트로 www.adelaidemetro.com.au)
오반(O-Bahn)이란 이름은 아무리 보아도 영어같지는 않은데요.
라틴어 omnibus("for all people")와 독일어 bahn("way" or "road")의 합성어라고 합니다.
처음에 외곽에 있는 집을 찾을 때 "오반버스타고 오시면 금방이에요" 라는 말을 보고
"오반이 뭐다냐?" 했는데
워낙 영어 지명이나 이름도 한국식으로 잘 줄여서 말하는 한국인들이라서
( e.g. 골드코스트 → 골코, 워킹홀리데이 → 워홀 등등.. )
오반은 무엇의 줄임말일까 혼자서 골똘히 생각을 해보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버스 정류장에서 via O-bahn to Tea Tree Plaza Interchange 라는 것을 보고
오반이 하나의 고유명사라는 것을 알게 되지요.
사실 이것이 그냥 일반버스 전용도로라면 여기서 굳이 소개하지 않아도 될 터인데
생김새부터가 특이하거든요.
마치 열차의 레일처럼 도로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사진 : www.baulderstone.com.au )
이렇게 한 것은 토렌스강 근처의 지반이 약하기 때문이라고 하는군요.
건축, 토목과 관련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어서 더 이상의 설명은 무리입니다.
곳곳에 터널이 있기도 하지요.
(사진 : www.baulderstone.com.au )
사실은 80년대에 애들레이드 동북부 교외지역에 인구가 급증하여 교통문제가 심각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정부에서는 시티~글레넬을 잇는 전차노선을 이 곳으로 연결하려고 했는데
사진처럼 터널도 파고 새로이 길을 닦던 중, 여론의 반대가 심하여 공사가 중단이 되었답니다.
그래도 어떻게든 교통 대책을 만들어야 하는데, 이 때 나온 아이디어가 버스웨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그냥 버스웨이도 아니고 Guided Busway랍니다.
오반을 건설하던 당시의 모습이네요.
(사진 : www.baulderstone.com.au )
버스 정류장도 새로 건설을 해야했지요.
(사진 : www.baulderstone.com.au )
오반은 애들레이드 시티에서 Tea Tree Plaza IC까지 12km에 걸쳐 건설되었는데
한 개의 정류장(Station)과 두 개의 인터체인지(Interchange)가 있습니다. (위의 노선도 참조)
정류장은 버스웨이 중간에서 승하차가 주된 목적이고,
인터체인지는 주변 동네로 연결되는 버스들로 환승이 쉽게 가능하도록 만든 것이라 합니다.
오반의 시작은 시티의 북쪽에 있는 Hackney Road에서 시작을 합니다.
(사진 : 위키피디아)
허가된 버스 이외에는 출입을 엄격히 금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이런 버스웨이 대신 버스전용차로를 운행하지만 잘 지키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지요.
잘못 들어섰다면 왼쪽으로 좌회전하여 나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차량의 밑부분이 부서지는 피해를 입게 됩니다.
이는 도로가 버스 기준으로 설계가 되었기 때문인데,
1년에 약 4대 꼴로 차량이 오반에 진입해서 사고가 나서 견인이 된다고 합니다.
견인차가 쉽게 드나들 수 있는 것도 아니라 오반 견인용 특수차량도 따로 있다지요.
Guided Busway의 비밀은 여기에 있지요.
(사진 : 위키피디아)
버스의 앞바퀴 옆에 이렇게 휠이 달려서 버스가 달리다 이탈하는 것을 막아줍니다.
타이어가 손상되어 방향이 제어되지 않는 경우도 방지한다고 하는군요.
이 밖에 버스 타이어 내부에 알루미늄 휠이 숨어 있어서
타이어가 구멍이 나도 다음 정류장까지는 끌고 갈 수 있게 해 두었답니다.
덕분에 버스웨이만 건설한 것이 아니라 이 도로 위를 달릴 수 있는 버스도 새로 주문을 했다고 하는군요.
이렇게 버스는 마치 레일 위를 달리는 열차처럼 운행을 합니다.
(사진 : 위키피디아)
오반에서는 구간마다 최대 시속 100km까지 주행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요.
곡선주로나 정류장 부근은 40km/h, 정류장 내에서는 20km/h로 제한을 하고 있어서
평균 주행속도는 60km/h 정도라고 합니다.
여기는 아직 가보지 않은 Tea Tree Plaza 정류장입니다.
(사진 : 위키피디아)
여기서 버스웨이가 끝나고 북쪽으로 가는 버스는 일반 도로를 달린다고 하는군요.
여기는 제가 주로 이용하는 Paradise Interchange입니다.
집 앞에서 여기까지는 버스로 7~8분 정도 걸리지요.
여기서 오반버스를 타면 학교에 약 10~15분만에 도착을 합니다.
앞으로 오반은 시티의 서쪽까지 더 건설하여 시내의 교통혼잡을 줄이고
북동쪽으로 노선 연장도 추진할 것이라고 하는군요.
남서쪽으로도 오반의 건설 요구가 있지만, 문제는 예산이라고 합니다.
...
..
.
그런데 오늘은 집 앞에서 파라다이스 IC까지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이 죽일 놈의 버스가 오지를 않았다죠.
다행히 마침 그 시간에 길을 지나가시던 형수님께서 IC까지 태워주셨는데
버스웨이라는 하드웨어도 좋지만, 제 때에 운행을 했으면 좋겠어요.
들리는 바로는 버스운전사의 급여가 높지 않아 인력이 부족하다고 하더군요.
그래서인지 승객이 많지 않은 시간대와 노선은 종종 펑크를 내기도 한답니다.
퀴즈 이벤트 2탄의 응모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저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