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ㅎㅎ
요즘 여름 맞나요??
완전 날씨가 무슨 아일랜드나 영국 처럼 맨날 흐린 날씨네요;;
오늘은 다시 박물관 이야기 입니다.
여기는 루브르 박물관에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 장소중 한 곳인
대회랑이란 곳이에요.
쭉 길게 늘어선 복도로 이렇게 벽에 그림들이 정말 많이 걸려있답니다.
여기서 쭉 끝까지 가면서 친구들이랑 관람 시작!
Christ carrying the cross
Biagio D'Antonio
십자가를 지고 가는 그리스도라는 작품이에요.
뒤에 어머니인 마리아와 예수님을 따르는 예루살램의 여인들이 있습니다.
오른쪽 밑에 있는 얼굴을 예수님의 얼굴인데
저 수건?에 얼굴을 닦자 그 얼굴형상이 저 수건에 나타났다고 하네요.
220*138cm의 그림입니다.
사람들이 특히 오른쪽 사람이 완전 여자처럼 그려졌네요.
대회랑 중간 중간에는 이렇게 대리석 조각 들이 정말 많습니다.
The virgin and child with st. John the baptist and st. sebastian
giovanni antonio boltraffio
평소 보던 마리아의 얼굴과는 많이 달라보이네요.
세례 요한과 함께 있는 성모와 아기 예수
(La Vierge à l'Enfant avec le petit saint Jean-Baptiste dite "La Belle Jardinière")
이탈리아의 화가, 건축가 이며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3대거장으로도 불리는
정말 유명한 사람 라파엘로
그 사람이 만든 작품입니다.
작품 해설 :
라파엘로가 제작한 여러 점의 성 모자 상 가운데 가장 대중적 사랑을 많이 받은 작품 중의 하나로 <아름다운 정원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이 별명은 성모 마리아가 초원에 앉아있는 아름다운 여인으로 그려진 데서 유래한다.
이 작품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스승인 안드레아 베로키오를 비롯하여 당시 피렌체 화가들의 작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피라미드 구도로 배치되어 있다. 중앙의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며, 삼각형 왼편에 엄마와 눈빛으로 이야기를 하는 듯한 아기 예수가 있다. 또 중앙에는 상징인 털옷을 입고 십자가를 들고 있는 아기 세례자 요한이 한쪽 무릎을 꿇은 채 아기 예수를 향해 경배를 올리고 있다. 이 무렵에 그려진 라파엘로의 성 모자 상에는 이처럼 아기 세례자 요한이 함께 등장하여 세 사람 간의 구도와 심리 등을 표현한 작품이 다수 있다.
성모 마리아의 발 위에 걸쳐진 망토 가장자리에는 ‘RAPHAELLO VRB’(우르비노의 라파엘로)라는 작가의 이름이 적혀있으며, 팔꿈치에는 ‘MDVII’(1507)이라는 연대가 적혀있다. 바사리에 의하면 이 작품은 시에나의 귀족 필립포 세르가르디를 위해 제작했으나 라파엘로가 로마로 떠나면서 미완성으로 남긴 것을 리돌프 델 기를란다요가 ‘푸른 옷’ 부분을 마저 그려 완성했다고 한다.
이 작품이 그려지기 직전에 미켈란젤로가 유명한 <톤도 도니>라는 성 가정 상을 그렸는데 미켈란젤로의 성 가정 상은 라파엘로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고, 이 작품에는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영향이 함축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라파엘로가 스승 페루지노의 스타일에서 완전히 벗어나 라파엘로 특유의 조화와 아름다움을 표현한 피렌체 시기의 대표작 중 하나다.
용과 싸우는 성 게오르기우스
(Saint Georges luttant avec le dragon)
라파엘
이 또한 라파엘이 그린 그림이네요.
작품해설 :
성 게오르기우스는 303년 순교한 성인으로서 그림이나 조각에서 보통 무장을 하고 수염이 없는 젊은 기사로 그려진다. 무장을 하거나 용과 싸워 승리했다는 점에서 대천사 미카엘과 흡사하나 말을 타고 뒤에 공주가 출현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이는 성 게오르기우스가 용에게 죽을 운명이던 공주를 구하고 용을 무찔렀다는 전설에서 비롯되며 이 전설은 초기 십자군 전쟁 시절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제작 연대, 크기, 이후 루브르 박물관에서 소장하게 된 경위 등이 <용과 싸우는 성 미카엘>(1505)과 거의 일치하며 이 때문에 두 작품이 서로 짝을 이루는 펭당으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 작품은 라파엘로가 피렌체에 체류한 이후에 그린 것으로 다 빈치의 스푸마토 흔적을 볼 수 있으나 풍경은 여전히 우르비노 시절의 특징을 보여준다. 고요하고 정적이던 움브리아 시절 스승 페루지노의 화풍에서 벗어나 화면 전체가 한층 더 역동적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점에서 라파엘로가 새로운 회화의 길을 모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개별 인물의 묘사에 충실하던 이전 스타일에서 벗어나 그림 전체의 구도와 흐름에 주목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은 라파엘로의 회화가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와 같은 양식의 변화는 당연히 그가 1504년 피렌체에 도착(1504)한 이후 다 빈치와 프라 바로톨로메오와 같은 화가들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두 작품에 대해 처음으로 언급한 이는 1587년 밀라노의 화가이자 미술 이론가인 파올로 로마초다. 그에 따르면 이 두 작품은 밀라노 출신의 한 남성이 피아첸자의 아스카니오 스포르차 백작에게 판매했고, 이후 마자랭 추기경(1602-1661)을 거쳐 루브르로 들어갔다고 한다.
*작품 해설등은 네이버와 구글에서 검색을 통해 작성하였습니다.
*7월부터는 제목과 아이디를 바꿨습니다.
기존 hdossa에서 요맨으로 바꿧고
제목은 K'NAAN★으로요. ㅎㅎ
K'NAAN은 소말리아어로 여행자라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