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이야기는 어제 이야기의 연장선에서의 "중국인" 이야기입니다.
우선 저의 3박 4일간의 28만원짜리 상하이 자유여행 상품으로 살짝 경험한 중국은 말이 통하지 않아 음식을 전혀 시켜 먹을 수 없어서 굶주림에 시달리며 폭염 속에서 고생하였고 어이없는 바가지 상술에 휘말려 악몽에 가까운 기억 뿐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중국에 대해 많은 부분 안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최근까지도 갑자기 들이대는 중국인 학생들 때문에 급짜증이 난 적도 있지만 호주에 온 뒤로는 중국인들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원래 영국 및 유럽계 이민자들로 구성된 식민지 국가였던 호주는 당초 중국인의 이민을 막을 목적에서 이민금지법을 만들어냈다고 합니다. 그러나 1973년 공식적으로 백호주의가 철폐된 이후 다시 유색인종의 이민이 허용되었고 중국인들이 그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자리매김하면서 호주의 주요 수출품목인 철광석의 주요 수출국이 되었고 경제적으로 중국과의 밀접한 관계는 중국인들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면서 그 영향력이 커지고 있지요. 그리고 지금 호주 총리 케빈 러드는 ANU에서 중국어를 전공하고, 국립타이완대학에서 유학을 하여 중국어(만다린)로 연설 및 회담까지 할 정도이며 사위와 형수도 중국계 호주인이라는 중국통입니다.
한국인들도 호주에 많이 와서 살고 있고, 특히 시드니에는 "코리아타운"이라는 공식 명칭만 없지 한인촌도 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주 사회에서 한국인들의 영향력은 중국인들에 비해 아주 미미합니다. 우선 인구 수에서 중국과 한국이 비교할 수 없고, 이민의 역사도 길지 않기 때문이겠지만 주변의 한국 사람들이 흔히 호주의 한,중,일 3국의 이민자 혹은 체류자들에 대해 말하기를 일본인은 서로 자기들끼리 잘 어울리려고 하지 않지만 대체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며 중국인들은 아주 끈끈한 유대 속에서 서로 돕고 지내는데 반해 한국인들은 서로 시기하고 질투한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호주에서는 한국 사람을 제일 조심해야 돼" 라는 말을 듣고, 저 역시도 그 말을 할 때마다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가끔 저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워킹홀리데이 같이 왔던 친구는 한국인에게 사기를 당해 돈을 날려먹기도 했고 제가 지내던 집에서 있던 사람도 역시 한국 사람에게 큰 돈을 뜯긴 적이 있다고 하더군요.
어쨌든 한국인 비하가 이 글의 요지는 아니고, 본론으로 돌아가면 잘 뭉치고 생존력 강한 중국인들은 정착한 도시마다 자신들의 영역을 만들어냅니다. 호주의 대도시에는 시티의 중심부에 차이나타운이 들어서 있지요.
브리즈번의 차이나타운이 있는 Fortitude Valley.
이 근방의 브런즈윅 스트리트(Brunswick St.)는 차이나타운이 있다고
중국어로 역명과 표지판을 표기해두기까지 하였습니다.
시드니에도 센트럴역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시티의 중심부로 향하는 곳에 차이나타운이 자리하고 있고
멜번에도 시티에 차이나 타운이 있으며
애들레이드에도 차이나타운이 시티 중심에서 도보 10분 이내 거리에 있습니다.
차이나타운은 도시들의 관광 명소 중의 하나로 꼽힐 정도이기도 하지요.
저는 그다지 신기하다거나 멋지다는 느낌은 없어서 사진에 담아두지 않아서 사진은 Panoramio에서 가져왔습니다.
그나저나 중국인들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을 보자면 중국인이 호주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역할 때문에 그들과 비슷한 생김새의 다른 아시아인들에게 도움이 됩니다. 아무래도 아시아인들을 보면 배타적이고 경계를 하고, 심지어 차별을 하는 백인들에 맞서서 확실한 존재감을 심어주는 중국인들이기 때문에 아시아인들이 살아가는 터전을 만들어간다고 해야할까요. 중국인들이 자리하는 곳에서부터 다른 아시아인들의 유입이 늘어나면서 정착해간다고 합니다. 중국인이 많지 않은 지역, 즉 백인들의 비중이 높은 곳은 다소 보수적이고 유색인종을 달가워하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이런 곳에서는 정말 "호주적인" 백인들 위주의 분위기가 조성되어 잡다한 문화가 아닌 백인 문화를 느낄 수 있지만 종종 아시아인들에 대해서 우호적이지 않은, 그리고 가끔씩은 직접적으로 불만을 대놓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곳에서 인종 차별을 느낄 가능성이 이미 타문화 유입이 진행된 도시보다는 크다고 봐야겠지요. (그렇다고 대도시에서 이런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 오히려 일부 돌아이들은 더 극단적인 움직임을 보이기도 합니다만 전반적인 분위기는 우호적인데 반해 외곽 지역에서는 조금 그렇지 않다고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한국인들은 중국인들이 모인 곳 옆에서 붙어서 사는게 편하다" 고 하는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또 "상행위"에 능한 중국인들은 호주 상권에서 큰 역할을 하는데 대형 시장이나, 매주 열리는 알뜰시장 같은 데서도 중국인 상인들이 상당수 차지하면서 아시안 식재료를 팔기도 합니다. 여기저기에 한국 슈퍼마켓이 많이 있고, 대형 슈퍼마켓에서도 아시안 코너를 만들어 물건을 팝니다만 한국 슈퍼마켓이 자리하지 않은 곳에서는 중국인들이 운영하는 슈퍼마켓에서 필요한 한국 식품을 사기도 합니다.
중국인 커뮤니티는 이미 자신들을 보호하려는 것을 넘어서 이제 호주에 영향력을 확대하는데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정치권에 중국 출신의 이민자들이 하나씩 발을 들이고 있고, 혼혈 이민자 중에서 아버지가 중국계 말레이시안인 Penny Wong은 상원의원을 거쳐 장관에 올랐지요. 책에서 읽은 바로는 중국인들이 머지않아 중국계 주지사를 탄생시키고 싶은 바람도 있다고 합니다.
학생의 입장에서도 중국인 학생들이 그나마 가장 쉽게 어울릴 수 있는 상대가 되기도 합니다. 저 역시 애들레이드에서 지내는 동안 만난 친구들의 대다수가 중국계입니다. 그 점은 조금 아쉽기도 하지만 비슷한 처지이다보니 서로를 이해하기에 더 쉬웠던 것 같습니다. 그 중에는 부모가 이민을 와서 호주에서 나고 자란 호주 국적자 혹은 영주권자의 자녀들도 있었지만 어떤 보이지 않는 인종의 틀이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지는 않나 봅니다. 그럼에도 이들은 호주 사회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뚜렷하게 낼 수 있다는 것이 참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