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초기에 인종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쓴 적이 있는데([잠꾸러기] #9. 차별은 어디에나 있다)
저는 직접적인 불이익이 없다면 어느 정도는 차별을 받아도 그냥 그러려니 하면서 넘기는 편입니다.
어느 정도의 체념일 수도 있고, "팔은 안으로 굽는다" 고 생각을 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거나 오늘의 이야기는 "실화" 입니다.
제가 잠시 머물고 있는 집의 이웃집에 사는 백인 아이들과 그 막돼먹은 엄마 덕분에 혈압이 올라 쓰러질 뻔했지요.
이웃의 아이들이 F**k를 외치며 凸ㅡ.ㅡ凸 댄스를 아저씨와 아주머니께 할 정도로 무례하다고 하는데
얘들은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영어를 잘 못하는 것을 알고 무시하며 모욕적인 행위를 일삼는데도
아이들에게 어찌할 수도 없는지라 끓는 속을 애써 참고 계셨다는군요.
그 아이들의 엄마라는 사람도 꽉 막힌 것은 똑같아서 말을 하려고 해도 할 말이 없다며 역시 퍽퍽한다는군요.
어쨌든 오후에 아이들과 밖에서 공놀이를 하고 있는데 그 문제의 옆집 녀석들이 담장을 넘어 일부러 공을 던지더군요.
그 녀석들의 만행을 이미 들었던 관계로 이 녀석들 잘 걸렸다 싶어서 다가가서 물어봅니다.
"너 뭐하냐?"
"공이 넘어갔다"
"그래서?"
"공 좀 달라"
애써 참고 좋은 말로 이야기합니다.
"알았다. 대신 이 쪽으로 공 던지지 말아라."
"오케이~"
공을 던져줍니다.
잠시 후 다시 공이 넘어옵니다.
"뭐하는거냐?"
"공이 넘어갔다"
속으로는 열이 치밀어 오릅니다.
"자 공 여기 있다. 다시 말하지만 공 던지지 말아라."
냉정을 유지하면서 말을 했지요.
당연히 여기서 끝날거라고는 생각지 않았지요.
역시 잠시 후 다시 넘어온 공
"공 던지지 말라고 했던 것 같은데.."
"공을 달라"
"장난하냐?"
"공을 달라"
"야. 영어를 하든 못하든 사람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해. 이런 장난은 이제 그만두지?"
"뭐라고?"
"니네 엄마도 니들이 이러는 거 아냐?"
"나 영어 몰라. 니가 뭐라는 건지 모르겠어."
"그래. 니네 말은 뭐냐?"
"일본어"
바보 띨띨이 녀석입니다.
차라리 인도어나 아랍어라고 했더라면 뭐라고 하든 알아들을 수 없는데 제가 기본 대화는 하는 일본어니 말이죠.
"좋아. 그럼 일본어로 이야기해봐"
"곰방와~"
"뭔 뜻인데?"
"..."
"흥.."
"모시모시"
"좋아. 무슨 뜻인 줄은 아냐?"
"Hello라는 뜻이지"
"아무데서나?"
"응"
바보 띨띨이 수준을 넘어섭니다.
영어를 모른다는 녀석이 영어로 묻는 질문에 영어로 계속 답을 합니다.
웃는 얼굴에 침을 뱉고 싶은 충동이 일지만 여기서는 아이들은 건드리면 안 되지요.
"이번에 공을 던져줄거야.
대신 니들이 자꾸 이런 식으로 행동을 하면 너희의 행동을 모두 녹화하여 너희 엄마에게 알리도록 하겠어."
"니가 뭐라는지 모르겠어"
"모르는건 니 사정이고.."
그 후에 다시 공이 날아옵니다.
카메라를 들고 나오고 녹화할 준비를 하는데 그 집 엄마의 비호를 받은 아이들이 집으로 찾아옵니다.
엄마 왈, "애들 공을 달라"
"벌써 공 몇 번이나 주었는데 얘들이 일부러 던진다."
"공이나 달라고!"
"좋아. 너 나와 이야기 좀 하자."
"공이나 내놔. 이야기는 할 필요없어."
그러면서 들어가버리는 엄마.
어딘가로 전화를 걸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릅니다.
공을 돌려주자 상황은 종결되지만 이 사람들이 "영어"를 하는 사람이 등장을 하자 당황한 모양입니다.
그 이후에는 시비를 걸어오지는 않았지만 언제 다시 폭발할 지 모르는 상황이지요.
엄마가 저 모양이니 아이들도 저 모양인 것 같지만 과연 저 녀석들이 엄마한테도 凸ㅡ.ㅡ凸 를 하지는 않겠지요.
실실 웃으면서 장난을 치는 모습이 '사람을 깔보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하더군요.
어쨌거나 일을 겪고 나니 기분이 좋을 리는 없고 호주의 인종 차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호주 이민성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단지 3퍼센트의 이민자만이 인종차별을 겪어보았다고 응답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설문조사가 제대로 된 결과인지는 의문입니다.
지난 5월에 사임한 텔스트라의 전 CEO 솔 트루히요는 호주가 인종 차별 국가라고 말을 했는데
그는 미국 국적을 가지고 있지만 멕시코 혈통이지요.
제가 있던 애들레이드는 그나마 인종차별이 덜한 편이어서 유색인종이라고 차별을 받았던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백인들이 주로 거주하는 곳에서는 가끔씩 불편한 느낌이 있기는 했지만 무난했지요.
SA가 영국의 죄인 유배지로 시작한 다른 주와는 달리 순수 이민자들이 정착하여 발전시킨 곳이라
호주에서 가장 개방적이고 차별이 없는 편이라고 하더군요.
호주의 날, Australia Day에 멜번에서는 이민자들의 퍼레이드가 열립니다.
한국인을 비롯하여 한국 문화를 좋아하는 다른 사람들도 함께 참여를 합니다만
그러나 얼마나 많은 호주인, 그 중에서도 백인들이 열린 마음을 가지고 이 사람들과 문화를 존중할 지..
다수의 백인들에게는 인종 차별 의식이 남아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런 뒷골목 카페의 분위기와 자유로운 사람들의 모습이 좋아 보이지만
어두워진 후에는 건물마다 보안요원이 들어서야 하고 길 한 가운데에는 경찰이 대기하고 있어야 할 만큼
여기저기서 싸움이 빈번히 일어나고 특히 동양인들에게는 안전하지 못한 것도 사실입니다.
다행히도 많은 사람들이 인종 차별 의식을 갖고 있더라도 대부분 내색하지 않습니다.
유색인종들이 호주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고, 이민 초기에 비해서 거부감이 줄어든 것도 하나의 이유겠지요.
그럼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소수 유색인종에 대한 편견을 가진 사람들의 행동이 달갑지만은 않더군요.
시드니 써큘러 키 근처의 버스정류장에서 동양인 여학생이 버스를 타자 "아시안" 이라 외치면서
버스를 두드리고 난동을 피우던 백인 젊은이들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사람이 원래 그런 것인지 많은 좋았던 기억보다 몇 되지 않는 안 좋은 것이 더 오래 남는군요.
자신과 다른 존재에 대한 경계감이 생기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본능입니다.
그렇지만 피부색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언어를 조금 못한다고 해서 놀리는 것은
상대를 경계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로 "배척" 이라고 보아야 할 겁니다.
기본적으로 상대를 존중하는 것은 누구나 갖추어야 할 덕목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부터 남을 이해하는 "배려" 를 갖추도록 해야겠다고 느끼는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