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9월 20일) 제가 사는 헤이그가 평소와는 다르게 매우 부산했습니다. 여왕이 사는 도시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좀처럼 여왕을 볼 기회가 없는 시민들이 여왕을 볼 수 있는 날이기 때문이죠.
(우연찮게 리즈님의 덴마크 로얄 페밀리 이야기에 이어 네덜란드 로얄 페밀리를 소개하게 됐네요 ㅎㅎ)
이름하여, Prince’s day(Prinsjesdag- 한글로 해석하면 작은 왕자의 날 정도가 되겠네요).
공식행사는 오후 1시부터 2시까지인데 오늘 제 수업이 정확히 1시에 끝났습니다. 네덜란드 문화 체험에 굶주린 국제 학생들을 위해서 좀 빨리 끝내줄 만도 한데 말이죠.
아무튼 끝나자 마자 자전거를 타고 바로 공식 행사가 열리는 비넨호프(Binnenhof)로 출발, 도착하니 이미 여왕님은 국회로 들어가 연설을 시작했다고 하더군요. 늦었구나 하고 실망에 그치지 않고 연설 후 나오는 모습을 보기 위해 좋은 길목을 찾아 헤매고 자리 잡은 후 30분. 1시 50분부터 여왕님의 행차가 시작됐습니다.
엄격하게 통제된 군인들 사이로 여러 부대들의 행진이 시작되고 군악대도 연주를 하며 지나갔습니다.
여왕은 언제 오나 기다리고 있으려니, 앞에 있는 군인 중 한 분이 거수경례를 하길래 드디어! 하고 카메라 렌즈에 집중하며 보고 있는데. 여왕이 아니라 여왕의 친척이라고 하네요. 어쩐지 여왕이라 하기엔 너무 수수한 마차였어요.
이제나 저제나 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드디어 저 멀리서 황금색 마차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기다리고 있던 시민들을 향해 친절히 손을 흔들어 주는 베아트릭스 여왕. 정말 잠깐이었지만 인자한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여왕과 같은 도시에 살기를 8개월 째. 드디어 네덜란드의 여왕을 직접 봤습니다. 하하
그런데 이 Prince’s day. 무엇을 하는 날 인가.
퀸즈데이와 더불어 왕가와 관련 있는 대표적인 날 중 하나인데요.
(퀸즈데이가 궁금하시다면 제가 저번에 올린 포스팅을 봐주시길 ㅎㅎ
http://www.gohackers.com/html/?id=hacdelegate&no=3873)
이 날은 사실 왕자와 관련이 있는 날이 아니라 네덜란드의 국회 개회일입니다. 매 년 9월 셋 째 화요일에 여왕과 로얄 페밀리들이 국회(비넨호프)에 모여 국회 개회일을 축하하고 여왕이 다음 연도의 예산과 국회의 주요 이슈에 대해 연설을 하는 날이죠.
그런데 왜 이름이 왕자의 날인가? 원래 ‘왕자의 날’은 18세기에 빌리엄 5세의 생일을 축하하는 날이었습니다. 또한 날짜도 지금과는 다른 5월 6일이었고요.(이 때는 네덜란드의 대표적인 공휴일이었다고 하네요) 하지만 이 빌리엄 5세 집권기 때 네덜란드에서 공화제 혁명이 일어났었는데요, 이 혁명 당시 네덜란드의 정치 세력이 빌리엄 5세를 지지하는 세력과 공화제를 지지하는 세력으로 양분되었습니다. 이 혁명 당시 매 년 왕자의 날은 왕가에 대한 충성을 보이는 정치적 의미를 띈 날이었다고 해요. 이런 이유로 인해 이 후 네덜란드에 입헌 군주제가 정착이 된 후에도 매 년 국회 개회일을 왕자의 날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전 여왕이 연설을 하는 모습도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연설하는 동안 비넨호프는 주요 인사들을 제외하고는 입장하지 못한다고 하네요. 30분 가량을 기다려 몇 초만 보게 되어 아쉽긴 했지만 검소하기로 유명한 네덜란드의 왕가답게 행사도 차분하고 수수하게 진행되어 또 나름의 네덜란드 정취를 느낀 것 같아 재밌기도 했습니다.
이후에 네덜란드를 여행하실 일이 있으시면 퀸즈데이나 프린즈데이에 맞춰 오시는 것도 특별한 경험이 될 것 같네요.
지금까지 네덜란드 특파원 만피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