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드디어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마지막 포스트가 되었네요..
이 포스트를 마지막으로 ... 마리와의 크라쿠프여행은 막을 내립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전세계 3천만 명 이상의 방문객이 다녀갔어요. 지난20세기부터 방문객 수가
꾸준히 증가해, 현재 년간 100개국 이상에서 100만 명여 관람객이 박물관을
방문하고 있다고합니다. 그 중 폴란드, 미국, 영국,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이스라엘
관람객이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특히 저는 이스라엘사람들은 정말 많이 와요.
아마 많은 유대교 사람들 때문인 듯.
수감자들의 독방. 아니면 고문실.
이름 모를 글들.
뭔가 전하고 싶었던 메세지 같은 ...
이렇게나마 보여지네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좁은 곳에서 잠을 잤다고 해요.
좁고 딱딱하고 추운 곳...
유대인들이 세수와 빨래를 하던 곳.
화장실 같은 경우는 거의 고장이 나서 제대로 이용조차 못했다고 하더라구요.
생체실험에 시달리고 열악한 환경에서 여러질병에 고통받았던 많은 수감자들..
추모를 하는 사람들이 놓고 간 초들.
두 번째 구역은 아우슈비츠 제2수용소로
알려진 비르케나우 수용소입니다.
이곳에 1944년 당시 유대인, 폴란드 인, 집시, 기타 국적자로
이루어진 90,000명 이상의 죄수들이 수용되었었어요
아우슈비츠 전체에서 가장 큰 구역으로, 막사는 대개
나무로 엉성하게 만들었고
나치는 1941년 오시비엥침에서 3㎞ 떨어진 브제진카(Brzezinka) 마을의 주민들을 퇴거시킨 뒤
그 가옥들을 압수하여 철거하고 이 수용소를 짓기 시작했답니다
대량 학살 장비들 대부분이 비르케나우에 설치되었고, 희생자의 대다수가
이곳에서 숨졌어요.
비르케나우 수용소는 버스를 타고 한 10분정도 가면 도착할 수 있어요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도 등장해서 유명해진 아우슈비츠 1에서 2km 정도 떨어진 곳에 확장되어 조성된 또 하나의 수용소로
가스실의 대학살로 악명을 떨친 곳이랍니다.
175 헥타르에 이르는 넓은 장소에 300여개의 수용소 건물과 4동의 대규모 가스실을
갖추고 있어요. 한꺼번에 2만 명까지 수용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아우슈비츠 제2수용소 곳곳에는 지금도 인체를
소각하고 남은 재로 가득하며,
아우슈비츠 유적은 대부분 이곳에 있어요. 수용소의 유일한
목적은 인간 말살이었습니다..
광막한 공간, 죄수용 막사, 건물들의 폐허와 잔해, 길게 이어지는 담장과 도로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극도의 비열함, 잔인함, 죄악을 생생히 느끼게 해 줍니다.
그리고 희생자를 위로하는 거대한 국제위령비를 비르케나우에 세웠으며,
수용소 터에 박물관을 건립하였답니다.
또한 나치의 잔학 행위에 희생된 사람들을 잊지 않기 위해 유네스코는
1979년 아우슈비츠를 세계문화유산에 지정하였어요
예전에 유대인들을 수용하는 기차가 다니던 기찻길
지금은 막혔지만.. 예전에는 수십개의 기차가 왔다 갔다 했다는
프란체스카 할아버지도 여기 제 2수용소에 있었다고 해요 .
여기서 엄청난 노역과 고통에 시달리며 버티다가, 중간에 도망칠 수 있었다는
일주일동안 기차 한칸에 수십명이 다닥다닥 붙은 곳에서
서로 오줌냄새 똥냄새 참으며 버텼다는..
프란체스카 할아버지께서는 폴란드에서 무려 이태리까지 걸어 오셨다고 해요
도착하는데 두달정도 걸렸다고
그래도 살아돌아오셔서 다행이지만,, 정말....
대부분의 건물들은 나치의 퇴각증거 인멸을 위해 파괴되었지만
미쳐 파괴하지 못했던 수용소 건물은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어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타다만 건물들이 꽤 있어요
1945년 1월,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자
나치는 대량학살의 증거를 없애기 위해 막사를 불태우고 건물을 파괴하였다는. 그
러나 소련군이 예상보다 빨리 도착해 수용소 건물과 막사의 일부가 남아 있었기에 지금의 아우슈비츠 박물관이
있는 것.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47년 폴란드의회에서는 이를 보존하기로 결정했고,
독일 또한 자기나라가 만든 비극을 반성하고 보여주려는 노력을 계속 해온다는.
밤이 되니 더 으슥해 집니다.
수용소 입구의 감시탑 위로 올라가면 수용소의 규모를 한눈에 짐작 할 수 있다고 해요
대규모의 가스실 역시 현재 파괴된 폐허의 상태로 현재까지 보존 되어있으며 한꺼번에
2천명이 수용될 만큼 대규모 시설이었다고 합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수용소 입구에서 검역을 마친 뒤 수용소 끝에 있는 곳까지 기차를 타고
이동해서 노약자 병자 어린이 임산부등을 제외한 분류작업을 거친 후
바로 가스실에 들어가 죽음을 당하고 곧바로 화장 되었어요
이곳은 워낙 규모가 방대한 탓에 여유있게 한 시간 이상을 게획하고 돌아보는 것이 좋아요
참고자료: 이지유럽 3 폴란드편, auschwitz_historia_i_terazniejszosc_wer_KOREANSKA_2010.pdf
를 발췌 참조하였습니다.
이렇게 크라쿠프의 여행은 막을 내립니다.
정말 많은 것을 느꼈던 여행이에요. 제가 몰랐던 역사에 대해 더 깊게 알게 되었고
반성도 하게 되었고... 더욱 공부가 하고 싶어졌던
유럽을 돌아 다니다 보면 정말 유럽의 역사에 대해 공부를 하고 싶어져요 ....
지금은 폴란드 역사부터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는..
유럽을 보며 가슴따뜻해지기도 하지만, 가끔 정말 아픈 역사를 보면 가슴이 아프고 슬퍼진다는...
보고 배우고 느낍니다.
그리고 마리와도 정말 가까워지게 된 계기. (아까 마리랑 또 싸웠지만. 허허 )
스웨덴 이후로 다시는 여행을 안가겠다고 다짐했었는데
(그 이유는 아시다시피,,,,여행만 가면 모든 물건을 다 잃어버리고 와서... )
그런데 크라쿠프에서 돌아올 때까지 저는 잃어버린 물건이 하나도 없었어요!!!!!!!
마리도 칭찬해주고 그래서 긴장이 쫙 풀리더라구요
바르샤바 도착해서 "난 아무것도 잃어버리지 않았다!!!!!!!!!!!!!!" 소리치며
집에 갔는데...
버스에 지갑을 두고 왔습니다.
안녕 내 지갑
여행도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