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15:00 12월-2월
8:00-16:00 3월-11월
8:00-17:00 4월-10월
8:00-18:00 5월-9월
8:00-19:00 6월-8월
개방 시간은 수용소 지역에 한해요. 수감자 정보 안내 사무소, 문서고, 수집
관, 도서관, 관리사무소와 기타 구역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7시부터 오후
3시까지 개방됩니다 그리고 . 1월 1일과 12월 25일과 부활절 연휴 첫 날에는 문을 닫으니
상기하고 가시길 *_*
두 개의 수용소 (제 1,2수용소, 비르케나우 수용소)지역과 전시물을 관람하는 데 최소 3시간
반 정도 소요되나 관람객의 개인적인 관심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요. 가이드와 동행하는 경우 일반관람(약 3시간 반 소요),
전문관람(약 6시간 소요) 또는 이틀 관람 코스 등을 선택할 수 있습니당.
저는 3시간 반 코스를 선택했어요. 하지만 안내 책자만 사서
책을 읽고 자기 스스로 돌아다니는 경우도 많이 있더라고요.
저는 그때 영어로 가이드 투어 했는데 한 30%만 이해했어요..
가이드 분께서 목소리가 너무 나긋나긋하시고 조용하셔서... 집중이 잘 안됐다는.. .
이제 내부를 둘러보도록 할게요...
4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비극의 현장
이 통들 보이시나요.
1940년 봄, 친위대 장관이 주동이 되어 가시철망과 고압전류가 흐르는 울타리,
기관총이 설치된 감시탑을 갖춘 공포의 강제수용소를 세웠어요. 그 해 6월 최초로 폴란드 정치범들이 수용되었고,
1941년 히틀러의 명령으로 대량살해시설로 확대되었으며, 그리고 1942년부터 끔찍한 대학살을 시작하였습니다.
열차로 실려온 사람들 중 쇠약한 사람이나 노인, 어린이들은 곧바로 공동샤워실로 위장한 가스실로 보내 살해되었어요.
모두들 샤워실로 들어가야 한다는 이유로 옷을 벗기고 가스실에 가둬서 몇백명씩 살해 했다는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의 요새화된 벽, 철조망, 철로, 발사대, 막사, 교수대, 가스실, 소각장 등은
나치스 독일의 대량 학살과 강제 노역 정책뿐만 아니라 유대인 대학살이 일어난 과정을 똑똑히 보여줘요.
이 유적에 보존되어 있는 물건들은 학살이 일어난 체계적인 구조뿐만 아니라
계획적인 살인의 희생자들에 관한 증거를 보존하고 있어요.
[네이버 지식백과] 아우슈비츠 수용소 [Auschwitz Concentration Camp, ─强制收容所] (두산백과) 참조
심지어 가스, 총살, 고문, 질병, 굶주림, 심지어는 인체실험을 당하여 죽은 사람이 400만 명으로 추산되며,
그 중 3분의 2가 유대인이라고 해요.
희생자의 유품은 재활용품으로 사용했고, 장신구는 물론 금니까지 뽑아 금괴로 만들었으며,
머리카락을 모아 카펫을 짰다고 해요
뼈는 갈아서 골분비료로까지 썼으니 사람의 몸뚱이 중 버릴 것이 하나도 없었죠.
그래서 흔적도 없이 사라진 수많은 사람들.
소장품 중 개인용품들을 통해 강제 수용소에 끌려오기 전에 희생자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아울러 그 소지품과 유해가 얼마나 경멸적인 방식으로 사용되었는지 알 수 있어요...
이 유적과 경관은 불필요한 복구 작업을 거치지 않고 본래 흔적들이 세심하게 보존되었기 때문에
그만큼 진정성과 완전성의 수준이 매우 높다는.
[네이버 지식백과] 아우슈비츠 수용소 [Auschwitz Concentration Camp, ─强制收容所] (두산백과) 참조
여기에 전시된 수집품만 정리해보면,
− 신발류 8만여 점
− 성명, 주소가 적혀있는 가방 2천
1백여점이 포함한 가방 3천8백
여 점
− 그릇, 접시류 1만2천여 점
− 안경 4만여 개
− 의족, 의수 460점
− 수감복 570점
− 기성복 260점
− 탈릿(유태인이 기도할 때 머리에
쓰는 천) 260점
− 비르케나우 제2수용소 창고(일
명 캐나다)에서 발견된 40입방
미터 규모의 희생자 철제 유품
− 수감자, 생존자 작품 2천여 점 포함
수용소 관련 예술작품 6천여 점
− 약 2톤에 달하는 여성수감자들
의 머리카락
auschwitz_historia_i_terazniejszosc_wer_KOREANSKA_2010.pdf 참조
수감자를 분류하자면,
유태인: 수감번호 부여자 약 20만명. 1942년부터 이송되기 시작한 유태인들은 수감자들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였음.
정치범: 약 16만명. 독일군에 의한 진압작전 또는 저항운동 중 체포된 사람들로 대부분이
폴란드인.
비사회계층 수감자: 수감번호 부여자 약 2만1천명. 주로 집시.
소련군 전쟁포로: 약 1만5천명. 이중 1만2천명에게 수감번호 부여.
단순교화대상자: 실제 또는 조작된 노동수칙 위반자.
경찰체포자: 수천여명의 폴란드인. 아우슈비츠 수용소 정식 수감자 신분은 아니며 카토비체, 미스워비체
등지에서 게슈타포에 의해 체포되어 형식적인 재판 및 즉결처분 대기자 신분.
형사범: 수백여명의 독일인 죄수들. 독일군은 이들 중 일부를 SS 보조요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선발.
종교적 양심수: 주로 독일 국적으로 최소 138명이 양심수로 파악됨.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수감.
동성연애자: 독일 국적의 수백명의 동성연애자
이렇게 유대인 뿐만 아니라 다른 이유로 잡혀 온 사람이 굉장히 많았다고 해요.
유대인만 없애려 했던 히틀러가 나중에는 미쳐서 자기나라 국민까지 죽이려 했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