씼고 일어났더니 9시. 마리와 같이 아침을 먹고 드디어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향하는 길
뭔가 다들 엄숙해진 느낌은 기분 탓일까요
한 1시간여 남짓 걸리는 시간. 근처에서 밥을 한끼 먹고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해드셋을 받고, (해드셋 없이는 꽁짜랍니다. 학생은)
이 아우슈비츠 가이드는 esn여행에 포함이 되었고요.
아 그리고 아우슈비츠 제 1수용소에서는 (원형이 제일 가장 잘 보존 되어있는 )
한글로 된 아우슈비츠 수용소 팜플렛을 얻을 수 있으니 꼭 챙기도록 하세요 !
아우슈비츠 수용소 입구에는 '일이(당신을) 자유롭게 한다' 라는 말이 써져 있어요
이 문을 통해서 매일 새벽부터 저녘까지 수용소에 있던 사람들은 중노동에 시달렸답니다
여러가지 막노동부터 시작해서, 정말 하루도 버틸 수도 없는 그런 공간에 모든 사람들이
같이 지내면서. 제대로 씼지도 제대로 일을 보지도 못한 그런 곳
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대해서 더 자세하게 설명 드리자면
나치가 저지른 유대인 학살의 상징인 강제수용소로 잘 알려져 있는 아우슈비츠는 원래 인구 5만 명의 작은 공업도시로,
폴란드어로는 오슈비엥침이라고 해요. 정확히 폴란드 남부 크라쿠프에서 서쪽으로 50㎞ 지점에 위치한 곳이고,
문명을 배반한 야만의 극치이며 인류가 저지른 가장 잔혹한 행위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노란 우체통 블로그 http://cafe.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1RX8P&fldid=HTkE&datanum=3740참조 )
지금은 이렇게 전 세계 사람들을 위해 활짝 열려 있지만,
그때는 정말 굳게 닫혔었던 문.
세월의 흔적이 남아있네요 아직도.
이 도시의 외곽에 있는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는 겉으로 보기에는 평화로워 보인답니다.
그냥 폴란드 소도시에 온 기분. 그 실상을 알면 경악을 하겠지만.
평원에 붉은색 벽돌로 지어진 수십 개의 집. 마침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보러 간 날 정말
안개가 자욱했어요. 나중에는 정말 심해져서 앞 3미터까지 밖에 보이지 않았다는
영화 미스트 아시나요? 딱 그 느낌이었어요. 정말로 ...
무려 40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비극의 현장이라고 할 수 있는 곳에
안개까지 끼니깐 마리가 옆에 없으면 못 가겠더라 구요.
설명을 참 잘 듣고 싶었는데.. 언제나 영어 가이드. 그리고 그때 가이드는 거의
졸면서 설명을 해주셔서 블로그와 여러 사전 그리고 책의 힘을 빌려 포스팅을 하겠습니다.
특히 이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나치 독일이 설치한 6개의 강제 수용소 중 가장 중요하고 악명 높은 곳으로,
유럽 지역의 유대인들을 대량 학살하고자 했던 이른바 ‘최종 해결(Final Solution)’을 하기 위한 곳이었다고 해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죽어간 곳...여러 곳에서 많은 학대와 핍박을 당하고
마지막에 드디어 해방인 건 가 하고 나온 곳이 바로 이곳.
이곳에서는 함부로 떠들 수도 함부로 뛰어다닐 수도 없는
그런 공기에 휩싸인다는.. 정말로.
이때는 아무 아이들도 말을 하지 않았어요. 마리와 저까지도.
어떻게 말하자면 최대 규모의 공동묘지라고 할 수 있는.
그리고 잊어서는 안 되는 곳.
24개국의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 (유대인)들이 이곳에서 체계적으로 굶주림과 고문, 살인을 당한 이곳
막대한 착취와 고통의 중심지였던 아우슈비츠 제1수용소와 아우슈비츠 제2수용소(비르케나우)
및 그 보호 구역은 세계유산목록에 등재되어도 있어요
이곳은 소위 열등한 집단의 인간 존엄성을 부정하고 체계적인 살인을
자행한 잔인하고 비인간적이고 조직적인 증거이고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는 나치의 인종 차별주의와 반유대주의 정책의
흉악함을 생생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 - 독일 나치 강제 수용소 및 집단 학살 수용소(1940~1945)
의미심장하게 걸려있는 꽃.
이 공간을 돌아다니다보면 정말 눈앞에서 뭔가 그려진답니다.
매일 매일 언제 이 끔직한 곳을 나갈지, 생각했을 유대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