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카이에서의 셋째 날은 일어나기 너무 힘들었다. 오늘 저녁에 가야하기 때문에 일찍 일어나서 더 많은 것을 보고 느껴야 하건만, 어제 마신 술의 여파와 여독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아침 9시가 다되어 조식을 먹고 난 뒤에 R과 나는 리조트 주변 시장을 둘러보기로 하였다.
시장을 둘러보며 기념품 구경에 삼매경이던 R이 발견한 완소 아이템. 아저씨가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원한다면 나무조각에 자신이 직접 보라카이에서의 추억을 새길 수 있다. 게다가 하나에 30페소라는 매우 저렴한 가격. 똑같은 제품을 해변에서는 50페소에 받는데 이곳은 거의 절반가격이다. 나는 내 남자친구에게 줄 것 하나와 나를 위한 열쇠고리를 하나 만들었다.
나는 보라카이에서 기념품으로 코코넛과 망고스틴 등으로 만든 천연비누 4개와 보라카이 모래가 들어간 예쁜 병 핸드폰 줄, 하나에 10페소 밖에 하지 않아 지인들에게 선물하기 좋은 서핑팔찌 18개, 나무로 만든 노란색 뱅골팔찌, 머리에 꽂는 대형 꽃장식을 샀다. 그리고 나중에 병에 담아두려고 해변에서 주운 조개들과 산호조각, 하얀 모래를 담아왔다.
점심이 훨씬 지나서야 다시 해변으로 나갈 수 있었다. 해변 주위를 산책하면서 우리는 마지막으로 이 풍경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이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눌러댔다. 코코넛 한 알 사서 돌아가면서 기념촬영을 하기도 했고 바다가 보이게 확 트인 해변 카페에서 망고쉐이크를 사마셨다. 찬 것을 너무 많이 마셔서일까. 갑자기 Kaylee가 복통을 호소했다. Kaylee가 약을 먹기 위해 우리는 조금은 이른 저녁을 먹기로 했다.
우리가 저녁을 먹은 곳은 BigMamas라는 필리피노 스타일 식당. 역시 가이드북이 소개한 보라카이 맛집이다. 이곳에서 우리는 시식과 스팸정식, 소고기 스프를 주문했다. 다른 레스토랑에 비하면 허름하고 화려한 메뉴도 없지만, 기본의 충실한 필리핀식 정통음식을 맛볼 수 있다는 점에서 나는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이곳의 음식은 마닐라의 웬만한 필리핀 전통 음식점보다도 맛이 있었다.
저녁을 먹고 난 후에도 Kaylee의 상태가 좋아지지 않아 결국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이 때 처음으로 우리는 숙소에 돌아가기 위해 트라이시클 탔다. 숙소에 Kaylee를 데려다 놓고 우리는 보라카이 저녁 썬셋을 보러 다시 해변으로 걸어 나갔다. 이날 썬셋은 어제의 그것만큼 아름답거나 감동 있지 않았다. 구름이 많이 껴있어 울긋불긋한 보라카이의 노을을 모두 가려버렸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Dmall에 위치한 유명 바인 Tidebar로 향했다. Tide 리조트 3층에 위치한 Tidebar는 수영장과 같이 있어 유명한 곳이다. 게다가 오후 4시부터 8시까지는 해피아워라해서 칵테일을 주문하면 주문한 칵테일 한 잔을 더 준다. 나는 진토닉, R은 스크류드라이버, Stacy는 롱 아일랜드를 주문했다. 몽환적인 인테리어로 환상적인 분위기를 지닌 이곳은 저녁이 되면 클럽으로 변한다. 어제 코코망가스나 길리스에 가지 말고 이곳에 올걸! 우리 세 사람은 모두 후회했다. 우리가 주문한 칵테일도 만족스러웠다. R과 나는 정말 보라카이를 떠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의 비행기 시간은 새벽 5시 30분. 배시간은 10시가 막차란다. 칵테일에 알딸딸해져서일까. 아니면 떠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일까. 보라카이의 밤하늘이 한 층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숙소에 돌아와 짐을 챙긴 우리는 50페소에 쇼부친 트라이시클을 타고 선착장으로 갔다. 돌아올 때는 터미널 요금이나 환경세 등이 없어서 1인당 80페소만 내면 되었다. 배에서 내린 후 다시 깔리보 공항까지 가는 벤을 타고 공항에 도착한 시각이 11시. 아뿔싸. 11시에 도착해서 공항 안에서 쉬기로 했던 우리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새벽 3시 30분은 되야 공항문을 연다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시작한 노숙.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장대비까지 쏟아지기 시작했다. 공항 밖 평상 위에서 기다리던 우리는 같은 시각 비행기를 타는 현지 여대생과 공항에서 일한다는 마르코라 남자애와 친구가 되었다. 3시간가량을 수다를 떨며 무료한 시간을 보냈고 우리는 평상 위에서 짧은 잠을 청했다. 평상에서 노숙하는 동안 나는 10군데나 넘게 모기에 물렸다.
깔리보 공항은 새벽 4시가 다 되어서야 문을 열었다. 공항에 들어가서도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장대비로 인해 비행기 시간이 1시간 30분이나 딜레이 되었다. 돌아가는 마지막까지 잊을 수 없는 기억을 선사한 나의 보라카이 여행. 이러한 고생에도 R과 나는 누군가가 다시 보라카이로 보내준다면 기꺼이 다시 돌아오리라고 다짐했다. 그리고 올 추석 때 우리는 돈을 빡세게 모은 뒤에 다시 한 번 오기로 약속했다. 젊음과 열정, 낭만이 있는 섬이 보라카이에 다시 돌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