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도 쌀이있다. 미국사람들도 쌀밥을 먹는다. 그런데 미국 쌀밥은 정말 맛이없다. 처음 다이닝홀에서 쌀밥을 먹으며 든 생각은, FTA에서 미국과 쌀 개방한다고 해도 우리 농민들께서 그리 큰 걱정은 안해도 될 것 같단 점이다. 물론 정치적 배경이나, 경제적 배경을 모르는 철 없는 학생이 하는 소리지만, 난 한국쌀이 백만원해도 미국쌀 보단 한국쌀을 먹을 것 같으니. 사실 미국 쌀이 문제인지, 조리법이 문제인지 잘 모르겠지만,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쌀은 우리나라 쌀이 아닌가 한다.
내가 밥 먹는 것 때문에 고생하는 것을 보고 미국인 룸메이트가 소개해준 일식집이 두 곳 있다. 스시를 파는 곳인데 밥이 sticky하다고 해서 두말없이 찾아갔다. 쿠쿠로 우리나라 밥 한솥 지어 미국 애들에게 멕여주고 싶단 내 얘기에 미국애들은 우리나라 처럼 찰진 밥 보다 훌훌날리는 밥을 좋아해서 먹는 것이다, 고 말씀한 분이 계셨는데, 음 내 생각엔 미국사람들이 sticky한 밥을 먹어 본적이 없어 모르는 것 뿐인 것 같다. 얼마전 Amy님이 쓴 것 처럼 알면 사랑하게 된다, 정말 그 말이 맞는 말인 것 같다. 내 룸메이트만 하더라도 나보다 더 스시매니아이며, 우리 host family아주머니도 sticky한 밥을 너무나 좋아하는 걸 보면. 미국인들 사이에 일식이 점점 더 인기를 얻어가는 건 아마 맛있는 밥 때문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미소숩. 두부과 미역이 함께 들어가서 더욱 맛나다)
(점심때 가면 롤을 3종류를 시켜도 팁, 택스 포함 20불 안으로 충분히 먹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음식점 메뉴판을 보니 단순 일식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퓨전 일식과 한식에 가까운 메뉴들이 많다. 스시류를 제외하고는, 롤 같은 경우도 일본식 롤이라기 보다는 김밥과 비슷한 느낌이 나고, 순두부찌개, 갈비, 돼지불고기, 등등 정통 한국음식들이 눈에 띈다. 아니나 다를까, 주인부부가 한국인이셨다. 덕분에 김치도 얻어먹고 한국말로 편하게 주문도 하고, 음식도 너무너무 입에 잘 맞는다. 더군다나 런치에 방문하면 50%할인된 가격으로 먹을 수 있어, 첫 미국생활동안 이곳이 나의 단골집이 된 것은 당연지사.
나의 단골집이고, 또 너무나 맛있으니 당연히 다른 친구들과도 자주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 때마다 잘먹었다, 스시 너무 맛있다, Japanese Restaurant 최고다, 는 얘기를 듣는다. 이제 친구들은 스시 스시, I like sushi를 막 입에 달고 산다. (롤을 먹어도, 한국 갈비를 먹어도 통칭은 다 스시다.) 당연하지, 거봐, 너네가 이 찰진밥을 몰라서 못 먹은 거라니까. 그런데 그 때마다 왠지 기분이 좋다가도 무언가 찜찜해진다. 나와 함께 간 친구들이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함께 좋아해주면 기분이 좋아져야 하는데, 스시 하나가 목에 턱 걸린 느낌.
머지 않아 친구들이 이 음식들을 Japanese food로 기억하고 있기 때문, 이란 사실을 알게됐다. 나는 햄버거, 피자, 와는 다른 이 음식들을 당연히 한국음식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친구들 기억엔 모든 이 비슷한 동양음식은 다 Japanese food인 거다. 심지어 정말 한국 주인이 만든 한국 김밥, 볶음밥을 시켜놔도 그건 일본음식일 뿐이다. 우리가 피자를 미국음식이라 기억하는 것 처럼.
실제 우리 학교 근처에 있는 또 다른 일식집도 이와 같은 형태로 운영된다. 정통 일식이라기 보단 퓨전 일식에 한국음식을 가미한. 주인은 물론 한국분이시다. 들어보니 미국에서 운영되는 많은 일본 음식점이 한국사람이 주인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사실 그 이유가 짐작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한국음식점이라고 이름을 걸어 놓자니 아예 방문하는 사람들이 한국인으로 제한돼 버릴테고, 또 메뉴도 한정돼 버리니, 많이 알려지고 또 한국음식과도 비슷한 일식을 타이틀로 걸어 놓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일본음식점의 탈을 쓴 한국음식점이라고 하면 너무 큰 비약일런지. 그러나 함께 간 친구들이 너무나 한국음식스러운, 심지어 한국음식들을 보고도 일본음식 맛있어, 하고 다음에도 일본음식점을 찾아가자, 고 하는 것을 보면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억울한 마음까지 들곤 한다.
엊그제 뉴욕 타임즈에서 무한도전팀과 성신여대 서경석 교수님이 실었다는 비빔밥 광고를 보고 깜짝 놀랐다. 무한도전이 뉴욕에 한식을 알리러 간다 했을 때, 여러가지 이유로 참 시끄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남은 출장비와 수익금을 보태 뉴욕 타임즈에 비빔밥 광고를 실었다니, 그 노력이 일회성이 아닌 것 같아 새삼 그들의 진정성이 듬-뿍 느껴진다. 우리나라가 아무래도 여러모로 한식의 세계화를 위한 시동을 걸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실상 미국에서 만나는 한국음식점은 코리아타운을 빼곤 손에 꼽기 어려우며, 그나마도 일본음식점이란 타이틀 안에서 메뉴판 한켠을 차지하고 있는 정도라니 조금 씁쓸해진다.
생각해본다. 한국음식점이란 타이틀을 당당히 걸고 때론 한식이 가미된 퓨전일식도 판다면 어떨까. 그 땐 내 친구들도, 아니 많은 미국인들이 한국음식 참 맛있다, 를 외쳐주겠지. 아, 그 날은 언제쯤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