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만날 때, 이 사람은 다음에 꼭 다시 만날 것 같은 예감이 드는 사람이 있다. 지금 우리가 만난 것이 단순히 스쳐지나가는 우연이 아니라 나중에 되돌아 보면 필연의 한 조각 인 것처럼.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다. 처음 미국 기숙사에 왔을 때, 첫 2주 정도를 룸메이트 없이 보냈다. 첫 일주일은 내가 국제학생 오리엔테이션 등으로 조금 빨리 도착한 탓이기도 했고, 그 다음 주 일주일은 나의 룸메이트가 무슨사정인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렇게 혼자 방을 쓰게 되는 건가, 생각했다. 사실 그 전 임시숙소를 쓸 때 만난 남미에서 온 흑인 룸메이트가 조금 버거웠기 때문에, 룸메이트 없이 지내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생각했다. 그러나 무척이나 꿈을 자주 꾸는 나는 새벽 3,4시쯤 문득 꿈을 꾸다 맞이하게 되는 적막에 유독 약했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라 한 어느 시인의 말처럼, 나는 무척이나 외로움을 잘탄다. 그렇기에 나는 사람이 주는 온기를 누구보다 잘 안다. 내가 한국에 있을 때도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홀로 생활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할 것이다. 누군가와 함께 살게 되면 불편한 점이 물론 있고, 때론 맞지 않아 마음이 상하게 되지만, 나는 언제나 곁에 사람이 있는 편이 더 좋았다. 불을 끄고 누워 도란도란 얘기를 할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것, 악몽에서 깨었을 때 나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인지할 때, 서로 기대야 하는 존재들이기에 사람 인(人)자를 쓴다는 그 말이 절실하게 와닿았다.
다행히도 housing office 측에서는 사정상 룸메이트가 오지 않은 학생들을 모아 새로 방을 짜 준다고 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그 날 아침 나는 Angela를 만났다. 같은 층, 더군다나 같은 side의 복도를 쓰는 친구들과는 왠만큼 얼굴을 익히고 인사를 하고 지냈는데, 그녀가 나와 같은 6층을 누를 때 어, 하는 생각이 든 것이 사실이다. 그녀는 내 방과 3번째 떨어진 곳에 살고 있었고, 그날 저녁 내가 새로운 룸메를 찾아 옮겨야 하는 방이 그 방임을 알게됐다.
처음에는 조금 걱정을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녀는 보통 호들갑스러운 미국인들의 성향과 달리, 철든 언니같은 느낌이 강했다. 그래서 가끔은 오해 아닌 오해도 했다. 혹시 내가 동양인이라 나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괜한 자격지심 말이다. 그러나 그녀와 일주일 정도 생활한 후, 감성적인 성향이 강한 나와 달리 이성적이고, 또 그래서 여자친구들보다는 남자친구들과 훨씬 잘 어울린다는 사실을 알았고, 이주일 정도 생활한 후 딸 넷인 집 셋째딸인 그녀가 독립적으로 자랐음을 깨닫게 됐다. 친구들이 미국아이들은 외향적이고 개인적인 성향이 많아서 불편하지 않니, 하고 물어보지만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 아마 전화통화 중에 그녀의 친구가 방에 가도 되냐, 고 물어보면 항상 룸메이트가 있어서 안돼, 하고, 가끔 친구를 데려올 때에도 조심스러워 한다. 또, TV를 볼 때에는 이어폰을 사용하고, 내가 자고 있으면 자신은 다른 일을 해야 함에도 불을 꺼주고, 혹시라도 내가 자고 있을 때 방 온도가 차가우면 라디에이터를 켜놓고 수업을 들으러 간다. 음식을 만들면 꼭 하나라도 나눠주고, 그녀의 식기도구나 전자기기를 함께 나눠쓰도록 나를 배려한다.
많은 한국인 친구들, 또는 아시아 친구들과 서로의 룸메에 대해 얘기를 하면서 나는 나의 룸메이트가 참 좋은 아이구나, 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실제 내 친구의 물음처럼 미국인들의 경우 외향적이고, 또 개인적인 성향의 아이들이 많기 때문에 많은 미국인 룸메이트들이 친구 데려오는 것을 당연시하고, 또 TV나 게임기등을 사용할 때에도 상대에 대한 배려없이 큰 볼륨으로 보거나, 아예 그냥 틀어놓고 자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새벽 시간이 넘어 룸메이트가 자고 있는데도 불을 켜놓는다거나, 큰 소리로 전화를 한다거나 하는 일은 예삿일이란다. 한 한국인 친구는 자신의 책상에 초콜렛이 놓여있길래 룸메이트가 준 것인줄 알고 먹었다 도둑으로 오인받는 일까지 있었다고 하니 문화가 다른 미국인 룸메이트와의 생활은 생각보다 그리 만만치 않은 셈이다. 무엇보다 한국을 깔보는 듯 하고, 아시아를 후진국 취급하는 태도가 억울하다 했다.
그럼에도 나는 한 번도 안젤라에게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없다. 그녀는 다른 미국인들처럼 와썹, 을 입에 붙이고 사는 드라마 퀸(호들갑 스러운 사람을 지칭하는 미국용어)도 아니고, 나보다 말을 많이 하는 수다쟁이(보통 미국인들은 우리보다 훨씬 말이 많은 편이다)도 아니지만, 내가 방에 없을 경우 장거리 외출을 하면 꼭 쪽지를 써놓고 나가는 그녀가 참 좋은 사람, 이란 것만은 안다. 참 좋은 사람, 이란 말, 내가 참 좋아하는 말이기도 하고 그녀와 참 잘 어울리기도 하는 말이다. 그녀는 넘어지지도 그렇다고 넘치지도 않는다. 나는 그런 그녀가 참 좋다.
윈터 브레이크가 시작했고, 대부분의 미국 학생들이 2~3일전에 기숙사를 떠난 것과 달리 그녀는 아르바이트 때문에 오늘에서야 집으로 향했다. 그녀의 집은 4~5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이기에 새벽에 출발하는 바람에 떠나는 모습을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머리맡에 카드가 하나 놓여있다. 미리 크리스마스 카드다. 카드에는 총 3가지가 들어있었다. 첫째는 크리스마스 카드. 두번째는 그녀 이모님과의 약속 내용이다. 기숙사에서 40분정도 걸리는 공항까지 택시를 타고 가야하는 나를 위해 같은 도시에 사는 그녀 이모님께 그녀가 전화를 해놓아 내 비행기 시간에 맞춰 픽업약속을 잡은 것이었다. 그녀 이모님의 번호와, 차 색깔, 번호판, 내 비행시간을 고려한 약속 시간은 내가 타지에서 참 좋은 사람을 만났구나 다시금 느끼게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는 25달러의 돈, 이었다. 처음 이 돈을 봤을 때 기분이 묘했다. 그녀가 왜 나에게 돈을 주었는지, 아침에 일어나 멍한 채로 한참 돈만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저번에 그녀에게 한국 책갈피를 선물한 적이 있었는데, 혹시 그것에 대한 보답인가, 그렇다면 선물로 주지 왜 돈으로 주었을까. 나혼자는 해답이 나지 않아 다른 미국인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니, 미국인들 사이에서는 크리스마스에 친구끼리 선물 대신 돈을 주고 받기도 한다고 한다. 보통 $15 정도씩 봉투에 넣어 건네곤 하는데, $25이나 들어있었다고 말하니 그녀가 너를 참 좋아하나보다, 고 얘기한다.
그녀는 아마 지금쯤 집에 도착하였을 것이고, 나는 빈방에 남아 혼자 글을 쓴다. 글로 쓰지 않으면 그녀와의 인연도, 고마움도 모두 잊어버릴 것만 같아, 그리하여 서울로 돌아가면 누군가에게, 아니 나 자신에게 팍팍한 사람이 될 것 같아, 마음들을 붙잡아 얼른 글에 묶어둔다. 이역만리를 떨어져 비행기에서 14시간을 날아, 같은 학교, 같은 기숙사, 룸메이트가 된 우리의 인연이 참 소중하다 여기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