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사』에서 파울로 코엘료 작가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로 전세계를 감동시켰다. 간절히 바라면, 세상 모든 것들이 너의 소원을 들어줄 거야.『밤은 노래한다』에서 김연수 작가는 자신이 10여년 끝에 책이 나올 수 있었던 건 자신이 간절히 바랐고, 또 정말 간절히 바랐더니 세상이 자신을 도왔기 때문, 이라 했다.
세상도 나의 한국음식에 대한 갈망을 들었던 것일까. 오늘 우리 학교 DINING HALL에는 5개월 만에 처음으로 마끼롤과 김치, 미소숩이 나왔다. 어느날 쨍-하고 나온 것은 아니고, 여기에 얽히 사연이 나름 존재한다.
한 2주일 전이었을까, 기말고사가 시작되기 이전에 FINAL FOOD로 먹고싶은 것을 적으라고 대형 게시판을 달아놓은 일이 있었다.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해 학기 마지막주 메뉴를 구성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미 학생들이 빼곡하게 GYRO, CHINESESE BUFFET, STEAK 등으로 게시판을 채워놓고 있었다. 나야 당연히 김치찌개, 된장찌개, 잡채, 닭볶음탕, 등등 한국음식을 잔뜩 적어놓고 싶었으나, 많은 학생들이 다 같이 이용하는 다이닝 홀에서 이런 메뉴가 나올리는 희박하고, 또 사실 그들이 만들 수도 없을거란 생각에, 마끼롤을 적기로 했다. 마끼롤 같은 경우 김초밥이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사실 말이 김초밥이지 우리나라 김밥과 진배없기 때문이다. 학교 근처 일식집에서도 많이 파는 메뉴고, 또 미국인들이 SUSHI와 ROLL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들도 충분히 만들 수 있을거란 생각하에 글씨 모양을 바꿔가며, 왼손 오른손 번갈아 쓰며 MAKI ROLL을 적어놓았다.
그 후 기말고사에 정신없고, 시험이 끝나니 또 그 나름대로 모든 것이 예뻐보여 정신없던 나날을 보내고 나니 어느새 오늘이 학기 마지막이었다. 아무생각 없이 다이닝 홀에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학교 메뉴판에 MAKI ROLL이 떡하니 붙어있는 것이 아닌가. 꺄아. 정말 세상이 내 소원을 들어주었구나. 5개월 동안 그렇게 한국음식, 한국음식, 징징거렸는데. 드디어 다이닝홀에서 일식을 가장한 한국음식을 맛볼 수 있다. 아, 김밥이여. 코엘료는 진리구나, 당장 코엘료의 다음 책 부터 찾아읽어야지, 온갖 생각과 함께 거의 다이닝 홀로 돌진했다.
(오늘 다이닝 홀에서 먹은 점심. 물론 나 혼자서 이 많은 음식을 다 먹은 것은 아니고, 친구 3명이서 먹은 것. 오른쪽 하단의 마키롤과 가운데 있는 바나나 푸딩이 내 플레이트.)
그리고 정말 있다, 있다! 정말 너로구나! 내 사랑 마끼롤. 식당에 있는 롤을 다 먹어버릴 기세로 이것저것 담아 자리에 앉을 새도 없이 하나 집어 먹었다. 그런데, 요 녀석 뭔가 이상하다. 어디서 많이 먹어 본 듯 한 재료인데, 영 김밥 속에 있으면 안될 듯한 놈이 있는 것 같다. 기분이 좋아 제대로 보지도 않고 먹었는데, 이거 자세히 보니 여기있으면 안될 놈이 김밥 속에 콕 박혀있다. 앗, 파,다! 쪽파쯤 되는 녀석이 김밥 속에 박혀 나를 보고 헤벌쭉 웃고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인지 김밥에다 파를 넣은 거다. 들어는 보았는지, 이거 파,김,밥이다! 오, 파 뿐만 아니다. 밥이「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순재 할아버지가 그렇게 외치시는 떡밥이 김과 다정스레 붙어있다. 김밥의 생명은 고슬고슬함인데……. 평소엔 그렇게 훌훌 날리는 밥만 주더니, 어떡하다 찰지다 못해 떡이 된 밥을 만들게 된거니……. 미소숩? 미소숩은 괜찮았냐구? 음, 그리 나쁘지 않았다. 간 안맞는 김밥천국 국물느낌이었달까. 그렇게 짜게 먹는 너네들이 소금은 다 어디다 버린거야…….
(자, 이분이 그 유명한 파김밥 되시겠다)
(파……. 보이시죠? 떡밥의 질감도 느껴지실지 모릅니다.)
그래도 괜찮아 괜찮아, 저기 KOREAN CABBAGE도 있대. 오, 정말?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고 또 냉큼 달려가니 정말 김치와 흡사하게 생긴 것이 있다! 오, 또 너로구나, 앞 뒤 안가리고 집어 담아 맛을 보니, 음, 이건 고추장? 그리고 통고추? 고추씨가 아직 털리지도 않고 올망졸망 붙어있다. 이거 흡사, 배추를 통고추와 고추장을 넣고 비빈듯 하다. 그래도 다른 곳에선 걍 배추에 고추가루 뿌려놓고 KOREAN CABBAGE한다니 우리학교 다이닝 홀 직원 분들은 노력하신거다. 아, 고추장 김치가 어디야. 사실 그냥 배추에 고추가루만 뿌려줘도 먹을 판인데, 모쪼록 신기하면서도 기이한 식사를 했다.
사실 내가 너무너무 큰 기대를 해서 그렇지, 그들의 기준에서 보자면 나름 꽤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어디서 그런 건 배웠는지, 참기름도 발라주고, 깨도 뿌려주고, 또 김밥 마는 게 어려웠는지, 2명이서 붙어서 한명은 잡아주고 한명은 말고 그러더라구. 김밥 하나를 마는데 거의 5분씩 걸리는 것 같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나라 김밥천국 아주머니들은 정말 달인이시다. 아, o동 김밥 아줌마, 보고 싶습니다.) 그럼에도 학생들을 위해 FINAL FOOD라는 것도 준비해주고, 더군다나 스시가 미국에서 유명하다 해도, 아직까지 그리 대중적은 음식은 아님을 감안해볼때, 아시아학생들을 위한 배려가 느껴진다. 더군다나 KOREAN CABBAGE는 어설프긴 했지만 감동이었다.
우리 학교에는 오늘 내가 간 DINING HALL외에도 3개의 DINING HALL과 또 $6.25 불 안에서 RETAIL SHOP의 음식(서브웨이 샌드위치, 버거킹, 파파존스, 등)을 골라 한끼로 먹을 수 있는 FOOD COURT가 존재하는데, 이 곳들 모두 학기말이라고 학생들을 위한 나름을 배려들을 해주었다. 내가 자주가는 오늘식당 외에 나머지 학생식당들도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해 FINAL FOOD MENU를 만들었고, 푸드코트 같은 경우 $6.25에서 $6.95 까지 쓸 수 있도록 달러를 올려주었다. 부족하긴 하지만 학생들을 향해 무엇이라도 하고 있다는 그 마음가짐이, 오늘 또 이 학교를, 미국을 조금더 사랑하게 만들어 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