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가게 들이 몰려있어 돈을 많이 못벌고선 뉴욕에서 베기기 힘들것 같았다. 어디 지나가다 한번을 안 살수도, 한번을 사달라고 누군가 보채지 않을 수도 없는 곳이 뉴욕이다. 그렇기에 물가가 비쌀 수밖에 없었다. 뉴욕에 사는 그들, 특히 맨하튼에서 사는 그들은 가난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12월의 뉴욕은 화려하다. 특히 성탄제의 뉴욕은 화려하다는 정의를 새로고침한다. 음악에 맞춰 반짝거리는 조명은 짧은 공연과 같고, 록펠러 센터앞의 30m가 넘는 소나무는 신의 작품과 같다. 의류상점이 몰려있는 5번가에선 성탄제를 이미 그들만의 파티로 만들어 버린 지 오래, 이제 다함께 흠뻑 취해 즐기는 장소가 되었다. 그렇게 5번가를 거닐면 센트럴 파크 코 앞에 명품상점들이 모여있다. 그리고 그 상점의 건물들은 그들이 추구하는 패션을 건물에 덧칠한다.
이런 거리에서 해질녁부터는 꽤 익숙한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흑인들 하나 둘 길가에 방수포를 펴놓고선 우리나라 동대문과 같이 모조품을 판다. 영어로 "핸드백", "하프프라이스" 이렇게 짧게 말한다. 동대문과 다른 점이라면, 동대문에선 적어도 모조품과 진품이 거리상 멀리 떨어져 있지만, 여기 뉴욕은 모조품과 진품이 쇼윈도 하나 걸쳐서 있다는 점이다. 즉, 진품가게 앞에서 그 진품의 모조품을 파는 것이다. 물론 밤시간대이니, 그 명품가게는 영업을 하지는 않았지만, 혹시라도 시간이 겹치게 된다면 어떤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지게 되는 걸까.
(사진을 찍는 것도 미안해 몰래 찍은 사진. 명품매장 바로 앞에서 이렇게 모조품을 팔고있다.)
그런데 지나다 보면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들의 영어 발음이 이곳 발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리고 모두 흑인이며, 일부는 영어를 알아들으나 결코 유창하게 표현하진 못한다. 결국 나는 그들이 이곳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사람은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또는 미국아닌 다른 나라에서 모조품을 떼다가 파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맨하튼 5번가를 걷다 보면 다이아몬드 street이라는 거리가 있다. 이는 일종의 닉네임인데, 보석상들이 일렬로 그 거리를 가득매우고 있다. 그리고 시중보다 좀 더 저렴하게 보석을 구할 수 있다고 한다. 과거 유대인들이 자신의 재산을 보석으로 바꿔 미국에서 정착하게 되는데, 이런 보석들을 거래하던 주 상점들이 이곳에 모여들면서 이 거리가 생겨났다고 한다.
(그 이름만큼이나 휘황찬란한 다이아몬드 거리. 모조품을 파는 그네들도 이렇게 성장할 수 있을까.)
맑은 물일 수록 잡티는 더 잘보이는 법, 뉴욕이 그랬다. 뉴욕은 화려하다. 그러나 길은 더럽고, 냄새가 나며 쓰레기도 이곳저곳 버려져있다. 유대인과 그 모조품을 파는 흑인들이 같은 길가에 존재한다. 차가없으면 살기 힘들다는 미국, 뉴욕의 지하철은 어둠과 같다. 침침하고 거의 버려진 것 같다. 그러나 지하철은 차가 없는 사람들의 유일한 이동수단이다.
뉴욕은 극명한 도시였다. 그리고 그 명암은 인접해 있었다. 흑과백, 부와빈, 화려한 건물과 더러운 길거리, 노점상과 명품 가게, 즐거운 관광객과 어두운 모조품 상인. 과연 그 명암은 바뀔 수 있을까. 모조품을 팔던 흑인은 열심히 돈벌어 지금의 다이몬드가 상점 주인과 같이 될 수 있을까. 밤 늦도록 비를 맞으며 어눌한 영어로 모조품을 파는 그네들의 모습에 괜스리 코끝이 찡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