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을 방문하기 전 뉴욕에 다녀왔다는 학교 친구에게 맛집을 좀 추천해달라고 부탁했다. 그 친구가 1초도 쉬지않고 서슴없이 얘기한 곳은 바로 카네기델리. 그 곳에서 먹은 치즈케익과 비프 샌드위치를 잊을 수가 없다면서 그 크기와 맛을 설명해주는데, 어찌나 그 친구가 실감나고 맛깔나게 얘기했던지 뉴욕에 오자마자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이 카네기델리다. 음, 그런데 입구부터 사람은 많은데 이거 절대 우리가 생각하는 맛집, 멋집 분위기가 아니다. 음식을 만들어 주는 아저씨들의 분위기는 험상궂고 음식점 분위기도 우중충하고, 음, 약간 조명만 바뀐 정육점 분위기? 예상대로 집에 돌아와 한국 사이트에 검색해보니 다들 맛집이라면서 왜그러냐, 최악의 브런치였다 등등 안좋은 평판 일색이다.
그러나 카네기 델리라는 이름에 조금만 더 관심을 가져본다면, 이 곳의 분위기를 그리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이름처럼 이 곳은 스타셰프의 레스토랑이 아니라 '델리'이기 때문이다. 델리는 쉽게 말하면 음식점이라기 보다 뉴요커들의 음식 슈퍼마켓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완성된 음식 뿐 아니라 소세지나 치즈 등도 팔고, 케익류, 쿠키류도 파는 그런 곳. 그러니 맛집이라 해서 차려입고 짠-하고 오면 시끌벅적 정신없는 슈퍼마켓 분위기를 만나게 되는 것이 어찌보면 당연지사. 이 곳은 뉴요커들이 출출할 때 우리가 편의점 들리듯 들리는 곳에 가깝기 때문이다.
<소시지, 치즈, 케익 등을 파는 델리는 뉴요커들의 슈퍼마켓과 같다>
그렇지만 카네기델리를 외관만으로 쉽게 판단해선 안된다. 맨해튼 웨스트 55번가 인근 7번 애비뉴 854번지에 위치한 이 허름한 카네기델리에 들른 유명인사만도 이 음식점의 한 벽면을 가득 채우니 말이다. 대충 훑어 보아도 각국의 대통령부터 우디앨런, 실베스타스텔론, 헤니 영맨 등 그들이 이 곳을 방문했단 사실조차 믿기지 않는 유명인사들이 가득하다. 카네기 델리의 성공신화, 와 같은 책도 나올 정도이니, 미국 내에서 카네기델리의 유명세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는 부분이다.
<카네기 델리의 한쪽 벽면에는 카네기델리를 다녀간 쟁쟁한 유명인사들의 사진으로 도배 돼 있다.>
이 유명인사들을 반하게 만든 맛의 비결은 바로 콘 비프(Corned Beef) 샌드위치와 치즈케익에 있다. 먼저 비프샌드위치 같은 경우 미국 국내선을 타보면 우리나라 특산품 판매되듯이 판매되고 있을 정도로 뉴욕 뿐 아니라 미국 전역의 트레이드마크로 자리잡은 상품. 사실 나는 너무 늦은 저녁시간에 간 지라 샌드위치는 배가 불러 맛보지 못하고 치즈케익만 사들고 왔는데, 치즈케익을 기다리며 샌드위치 만드는 것을 구경해보니 첫째로 왜 친구가 그토록 추천했는지, 또 한국사람들의 평가는 왜 썩 좋지 못했는지 얼추 이해가 간다. 일단 샌드위치 안에 콘 비프가 무지무지하게 양이 많다. 그냥 눈으로 얼추보기에도 10겹은 돼 보이는 콘비프가 샌드위치속에 들어가 있다. 정말 거의 탑 같은 수준. 미국 친구가 흥분하며 설명해주는 것이 이제야 이해가 된다. 정말 미국 사람들이 딱 좋아하는 스타일의 샌드위치다. 반면 이런 스타일은 한국 사람들에게는 그리 썩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맛을 보지 못했으니 구체적인 평가는 할 수 없겠지만, 그 어매이징한 크기가 미국인들의 뇌리에 강력하게 박히는데 한 몫했음은 분명한 듯 싶다.
<그 이름도 유명한 카네기 델리의 치즈케익 납시오.>
자, 그럼 내가 고른 치즈케익. 많은 한국 여행자분들은 샌드위치보다 오히려 카네기델리에서 맛봐야 할 건 치즈케익, 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그만큼 한국인의 입맛에도 잘 맞는 치즈케익이란 얘기. 사실 처음엔 가격을 보고 조금 망설였던 것이 사실이었는데, small 치즈케익 한 조각이 무려 택스 포함 $9가 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유명하니 맛보자, 고 케익을 기다렸는데 역시나 미국의 음식크기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스몰치즈케익이 높이며 폭이며 넓이며 고놈 참 실하다. (성인 남녀 두명이서 디저트로 두고두고 3일을 먹었다) 일단 카네기델리 치즈케익의 가장 큰 장점은 느끼하지 않다는 것이다. 먹어도 먹어도 느끼하지 않고 오히려 담백하다. 그렇다고 치즈가 적게 들어갔느냐, 그런건 절대 아니다. 사실 이 치즈케익의 90%는 치즈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치즈케익의 치즈가 고체느낌이 날 정도로 많이 들어가고 정말 먹다보면 치즈 아닌가 싶을 정도다. 먹고나면 가격대비 절대 비싼 집은 아니란 생각이 든다. 치즈케익 또한 빵케익인지 치즈케익인지 구분이 안가던 한국 치즈케익들 사이에서 이것이 치즈케익이야, 하며 획을 그어준다.
<엄청난 크기의 스몰치즈케익 한 조각.>
나의 결론은 일단 미국인 친구와 함께 간다면 카네기 델리는 무조건 환영받을 것이다. 그리곤 내 친구처럼 얼굴 벌개지며 최,최고의 맛집이야- 할테다. 그러나 한국인 여행자라면 생각했던 맛집의 이미지와는 조금 다름을 알고 가야할 것이다. 무엇보다 혼자 하는 여행자라면 그 양과 크기가 부담스럽지 않을까 싶다. 1인분의 가격이지만 실제 2인분의 가격에 가까우며, 그 양도 2인분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샌드위치 같은 경우 두 명이서 하나를 시키면 sharing fee가 따로 차지되니 요점도 주의해야 하겠다. 음, 사라베스같이 분위기 좋은 브런치 레스토랑도 아니고, 또 사실 한국인 입맛에는 오직 맛으로 승부볼만한 맛집도 아니지만 미국인이 어떤 맛집을 좋아하는지 궁금하다면, 그리고 정통 미국식 맛집을 알고싶다면 들려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아, 치즈케익 신봉자라면 또 무조건 성지순례하셔야 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