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동네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모셔요
일요일 저녁. 친구와 저녁을 먹기로 했는데, 레스토랑 가기는 귀찮고 그냥 집에서 피자를 오더해서 먹기로 했다. 미국은 주문 시스템이 우리와 조금 다른데, 대부분 전화로 오더를 해놓으면 나중에 차로 직접 찾으러 가는 식이다. 배달이 안되는 것은 아니나, 우리와 달리 배달가능한 지역이 한정되어 있고, 또 팁을 따로 줘야하는 등 약간 번거로움이 있기 때문이다. 대신 직접 오더한 피자를 받으러가면 할인도 되니 꽤 나쁘지 않다.
아무튼 우리도 파파존스에서 피자를 오더해놓고, 조금 시간이 남아 동네를 산책하기로 했다. 혹시 전에 이야기를 읽어보신 분이라면 아시겠지만, 내가 사는 곳은 시골.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않았고(전무함) 난 차도 없는지라 오히려 가까운 우리동네를 놓치고 사는 경우가 많다. 오늘은 그런 나를 위해 함께 온 친구가 마을 투어를 해주겠단다. 그 친구가 소개한 첫번째 장소는 바로 우리 동네에서 제일 높다는 곳. 땡땡 마운틴 되시겠다. (사실 무슨 마운틴이었는지 이름을 잊어버려서....)
그런데 뭐 이거 이름만 마운틴이지 차로 조금 꼬불꼬불한 길을 10분정도 타고 올라가니 금방 정상이 나온다(..) 그래도 나름 신경써서 데려온 친구에게 좋아하는 기색을 보여야 하는데 산 정상이 우리동네 약수터와 비슷하니. 더군다나 가구 수도 얼마 없기에 내려다 보이는 풍경도 그닥. 오, 카터야 미안.....그래도 사실인데 어쩌니. 그래도 할리우드 오버액션이 그냥 있는게 아니지. 그래도 여기가 나름 미국땅이니 '오' '그레이트' '원더풀' '오우썸'등의 내가 아는 수식어들을 모조리 해주니, 같이 온 친구 무척이나 뿌듯해 한다.
"담번에도 또 오고싶은 전화해. 여기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거든" 하는 친구. 그 날 이후로 한 번도 전화한 적 없다. 그러나 정말이지 공기가 너무 맑아서 가슴이 확 트이는 것은 사실이다. 풍경이나 볼거리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상쾌한 공기를 마시니 머리가 맑아지고 기분도 절로 프레쉬해지는 느낌.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도그워커들도 꽤 많이 보이고, 친구말로는 여기 집값이 엄청 비싸단다.
친구가 데리고 나온 개도 무척이나 신이났다. 친구개들이 많으니 그런 모양. 아, 미국에선 우리와 달리 조그만 애완견을 거의 볼 수 없다. 다들 이렇게 큰 개들 뿐. 처음엔 늑대아니냐며 너무 무서워했었는데(내 친구의 개는 작은 축에 속한다. 큰 개들은 정말 늑대같음) 이 친구와 자주 놀면서 친구의 개도 자주 만나다보니 자연스레 큰 개들도 귀엽게 보이기 시작한다. 요즘엔 친구대신 요 녀석을 보고싶어 자주 놀러가는 정도.
나를 이 곳까지 데리고 와준 배려심 많은 친구는 카터라는 친구. 수업시간을 통해 만났는데, 건축에 관심이 많은 친구다. 건물 뿐만 아니라 소소한 공예품 같은 것을 만드는 재주도 좋아서 이 친구 집에가면 직접 나무를 깍아서 만든 공예품도 있고, 크리스마스 때는 직접 만들었다는 소금-후추 통을 선물로 주기도 했다. 초콜릿 한 박스 사준 나에 비하면 남자임에도 나보다 더 섬세하고 꼼꼼하다.
비록 우리 동네 약수터만 한 조그만 언덕이었지만 (뭘 보고 마운틴이라 이름붙였는지..) 오랜만에 이렇게 높은 곳에 오르니 기분도 상쾌하고, 또 무엇보다 친구의 배려가 참 고마웠던 하루. 물론 이렇게 나름 언덕에서 놀다가 먹은 피자맛은 2배로 더 맛있었다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