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세렌디피티>처럼 연애하길 꿈꾼적 있다. 문자하지 않아도, 전화하지 않아도, 얼굴마주보지 않아도, 언젠가 세렌디피티 주인공들처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꿈꾸었다. 세렌디피티 영화 속 주인공들이 우연히 다시 만나 맛있는 프로즌 핫 초콜릿을 먹던 바로 그 장소 <세렌디피티>. 나의 연애상대와 함께 그 곳에 갔다.
처음 세렌디피티 까페를 갔는데, 생각보다 줄이 길지 않다. 다행이다 싶은 마음에, 얼마정도 기다려야 되냐고 물으니 장장 3시간을 기다려야 한단다. 알고보니 사람들이 다 웨이팅 리스트에 이름을 적어놓고 너무 많이 기다려야 하니 주변에서 영화 한 편 보고, 쇼핑 좀 하고, 그러고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가게안은 너무 번잡해서 일행 중 한명만이 들어와 기다릴 수 있단다. 그렇다, 영화 한 편 찍기엔 찍고싶은 사람들이 너무 많은 거다. 이미 구경할 거 다 하고, 집에 가는 길에 가벼운 마음으로 핫 초콜릿이나 먹을까, 하는 마음으로 들린 것이라 주변을 멤돌아도 딱히 할일이 없다. 영화 시간도 잘 맞지 않고, 재밌는 영화도 없고. 1시간 정도 주변을 배회하다 다시 까페안으로 들어가 기다리기로 했다. 다행히 우린 둘 뿐이고 생각보다 웨이팅 시간이 많이 길어지지 않아서 까페안에서 기다릴 수 있었다.
<까페안은 사람들로 북적북적. 3시간을 기다려야 했던 웨이팅 리스트.>
그럼 그 유명하단 프로즌 핫초코릿을 만나기 전 까페의 얘기를 좀 해볼까. 많은 사람들이 이 까페를 영화 때문에 유명해진 곳이라 생각하거나(물론 그런 측면이 있지만), 영화 때문에 이름이 세렌디피티 일 것이라 생각하는데, 이 곳은 영화 촬영 전부터도 너무나 유명한 곳이여서 영화 촬영지로도 캐스팅 된 것이라 한다. 까페의 이름은 <세렌디피티2>. 영화의 이름도 이 까페에서 딴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기다리는 것이 지루하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세렌디피티는 그래도 약간 덜 지루하다. 워낙 주변이 예쁘게 장식돼 있어서, 가게 안 장식을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겁기 때문이다. 어디서 이렇게 예쁜 것을 다 수집했는지 정말 놀라울 정도이다. 세렌디티피에서는 직접 핫 초콜릿 가루를 비롯한 기념품들을 팔기도 하는데, 기다리다가 심심하면 구경도 하고 하나정도 구입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싶다.
<기다리는 동안 찍은 까페의 내부. 이런 예쁜 소품들을 유리 장식장에 모아놓았는데, 너무 아름답다.>
3시간 까지는 아니고 2시간 정도 기다려 자리에 앉았다. 보통 유명한 맛집 같은 경우 최대한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 테이블을 바짝 붙여놓거나 심지어 합석을 시키는 경우도 많은데, 세렌디피티는 절대 그렇지 않았다. 또한 자리를 안내할 때도 인원수별로 알맞은 공간을 주기 때문에 6명이 가서 비좁았다거나 그런 일도 절대 없다. 최대한 손님들이 즐겁게 보낼 수 있도록 배려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내해주는 웨이터분의 첫 말도 Enjoy! 였다.
<너무너무 예뻤던 세렌디피티의 실내 분위기. 마치 동화 속 한 장면에 온 것만 같다.>
웨이터가 메뉴판을 들고 오는데, 메뉴판이 너무너무 크다. 대형 신문 읽듯 메뉴판을 들고 읽어야 하는데 이것도 꽤 재밌다. 큰 메뉴판 만큼이나 많은 메뉴가 있었지만 주문은 오래걸리지 않았다.두 말 않고 제일 유명하다는 프로즌 핫 초콜릿을 시켰다. 한 사람당 $8.5 이상은 시켜야 한다고 해서 평소 좋아하는 피칸 파이도 함께 주문했다. 이 곳을 방문했던 다른 한국사람들의 리뷰를 보니 양이 너무 많아서 다들 하나를 두고 쉐어했다, 는데 아마 최근에 이 규칙이 새로 만들어진 것 같기도 하다. 몇 시간을 기다려야 잡을 수 있는 테이블 인데, 사실 딸랑 메뉴 하나만 시키고 가는 것도 가게 입장에선 얄밉기도 하고, 그렇다고 손님입장에서 이렇게 리미트를 정해놓으니 그것이 또 얄미워 보이기도 하고.
<무지무지 큰 빅 메뉴판! 메뉴판 조차도 너무 예쁘게 생겼다. 하나 간직하고 싶어졌던.>
<세렌디피티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프로즌 핫 초콜릿. 대부분의 손님들이 이 것을 주문한다.>
아무튼 조금 기다리니 프로즌 핫 초콜릿이 등장한다. 그런데 크기가 정말 엄청 크다. 항상 팥빙수같은 빙수제품을 먹을 땐 옆에 흐르는 것이 불편했는데, 여긴 나올 때부터 큰 접시를 함께 받쳐서 나온다. 한 입 먹어보니 간이 너무 잘 된 느낌이다. 음, 무슨 말이냐 하면 평소 아이스 초코를 먹을 때는 얼음 때문에 농도가 묽어지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 집은 얼음 자체에서도 맛이 난다. 위에 올려진 생크림과 초콜릿 가루와 함께 먹으면 더 없이 행복한 영화속 주인공이 되는 것.
프로즌 핫 초콜릿 외에 다른 음식은 맛있다는 평이 없어서 걱정했는데, 피칸 파이 역시 맛있었다. 정말이지 피칸이 살아있다. 보통 다른 곳의 피칸 파이는 피칸을 좀 더 작게 잘라 토핑해주는데, 이 곳은 피칸을 통째로 숨쉴 틈새도 없이 박아놓았다. 피칸에 대해 조금 덧붙여 보자면, 피칸은 호두와 조금 다른 것인데, 호두의 약간 씁쓸한 맛이 느껴지지 않으면서도 고소한 맛은 그대로 느껴진다. 그렇지만 피칸이 실한 것 외에는 피칸 파이는 워낙 아무집이나 다 맛있는 것이라 특별히 세렌디피티만의 맛이 느껴진다거나 그렇진 않았다. 이 집도 다른집 만큼 맛있었다.
<언제어디서다 참 맛있는 피칸파이는 나의 페이보릿!>
2시간을 기다려 핫 초콜릿과 피칸 파이를 먹고 나니 벌써 밤 11시가 넘어있다. 추운 날에 차가운 것을 너무 많이 먹었더니 온 몸이 시렵다. 과연 영화에 나온 곳에 찾아갔다고 우리도 영화 속 주인공들 처럼 되는 것일까. 날이 추워 내 옆사람의 손을 꼭 잡았다. 그렇지 않을 것이다.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그 주인공들이 이 곳에서 프로즌 핫 초콜릿을 먹었다, 가 아니라 그 둘이 다시 만났다는 것, 이니까. 장소는 중요치 않다. 이렇게 옆에 손 꼭 잡아줄 사람만 있다면 영화는 언제 어디서든 시작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