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령자의 합격 소감
단언컨대 | 2017.03.25 | 조회 1682

여기 게시판을 드나든 것이 원서 내고 나서 결과를 기다리면서였으니

2-3 달 정도 되었네요.


왜 결과가 나오지 않는지 초조하기도 하였고,

다른 분들의 합격 소식을 들으면 부럽기도 하였고,

인터뷰 할 때는 여기서 본 후기들이 도움이 많이 되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하고 2주 넘게 기다리는 동안 초조함의 절정을 맛 본 적도 있습니다.


처음엔 정보를 얻기 위해서 이곳을 드나들기 시작했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얼굴도 모르는 여러분에게 정이 들어가는 느낌입니다.

남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수고로움을 자처하는 일이었기에 외롭기도 하였지만

적어도 여기서는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큰 위로와 힘이 되었습니다.


제 나이를 밝힐 수는 없지만,

저는 이 게시판에 오는 사람들 중 최고령자라고 단언합니다.

나이가 많아 고민인 분도, 나이가 꽤 많다고 했던 분들도 저보다는 아래였으니까요.

토플 시험을 보러 가서도, GRE 시험을 보러 가서도 저는 늘 최고령자였습니다.

복도에 붙여 놓은 roaster 를 보면 저와 나이가 비슷한 분조차 없었습니다.

더러 중,고등학생 자녀 시험 보는데 함께 온 부모님들이 제 또래인듯 했습니다.


교사로 오랫동안 일하면서 공부를 손에서 놓지 않아 왔기에 공부가 어렵지는 않았지만

퇴근 후 책상에 앉아 늦은 시간까지 공부하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또한 낮에는 매우 현실적인 인간으로,

저녁에는 다른 세계를 동경하는 인간으로 살아가는 이중적 삶이

처음에는 즐거웠지만 나중이 되니,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혼란을 가져오는 다소 위험한(?) 경험도 해 보았습니다.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불확실함과 불길한 예감들 때문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습니다.

어느 정도는 안정된 삶을 살고 있었기에 잃을 것은 없었지만,

그동안 투자한 시간과 노력이 아무런 결과 없이 통채로 사라져 버린다는 것은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며칠 전 박사과정 어드미션을 받았습니다.


교수들이 내 나이 또래인 한국에서라면 힘들었겠지만,

역시 미국은 공부하는데 나이를 따지지 않는 나라이더군요.


그렇게 기다리던 어드미션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미래가 두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젊었을 때 미국에서 석사를 했던 경험이 있어

다른 나라 말로 공부하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이게 고생길의 시작이 되겠지만, 모처럼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합니다.


여기 오는 여러분들처럼 대단한 학교에 붙은 것은 아니기에

어드미션 포스팅은 하지 않으려 합니다.


이 나이에 왜 공부를 하려고 하냐고 묻는다면,


저는 공부하고도 돌아올 곳이 있기 때문에 '공부해서 뭐 하려고'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

많은 경력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는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전문가가 되고 싶었으며,

눈에 보이는 실적과 형식만을 중시하는 조직과 그 속에서 과도하게 정치적인 사람들에 대해 실망,


많은 것들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행복하지 않은지,

그리고 왜 사람들은 행복하지 않은 채로 그렇게 내달리며 사는지에 대한,

의문과 회의 때문이라고 답을 하고 싶습니다.

나의 아이들에게 그런 미래를 물려 주고 싶지 않기도 했고요.


대단한 여러분들 앞에서 감히 소감을 남겼습니다.

그동안 위로와 힘이 되었던 얼굴 모르고 이름 모르는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것이 누구이든지, 어떤 상황에 있든지,

사람은 꿈을 꾸고 있을 때, 그리고 그 꿈을 향해 가고 있을 때

가장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그런 점에서 여러분들 모두 가장 아름답고 멋진 사람들입니다.

모두들 건승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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