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닐하우스에서 나노세계로 날아오른 ‘용’ , 유룡 교수
나노 | 2007.11.07 | 조회 470
유룡(52) 교수는 1977년 서울대 공업화학과를 졸업하고 KAIST 화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한국원자력연구소에서 근무하다가 미국으로 유학가 1985년 스탠퍼드대 화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버클리 소재 캘리포니아대를 거쳐 1986년부터 지금까지 KAIST 교수로 일하고 있다. 2000년 대한화학회 우수논문상을 시작으로 2001년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우수논문상, 일본전자현미경학회 최우수논문상, 미국화학회 심포지엄 미래연구상, 과학기술부 이달의 과학기술자상에 이어 2002년에는 대한화학회 학술상까지 휩쓸었다. 올해 4월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을 받은 유 교수는 이제 명실공히 한국 ‘간판 과학자’로 떠올랐다. 분자구조 모형을 들고 있는 KAIST 화학과 유룡 교수. 모형 가운데 구멍이 뚫려 있다. 유 교수팀은 구멍의 위치가 일정하고 구멍 주변 골격이 단단한 결정성 물질을 개발하고 있다. 용꿈의 주인공은 바로 한국과학기술원(KAIST) 화학과의 ‘유룡’ 교수. 나노미터(nm, 1nm=10-9m) 크기의 미세한 구멍이 규칙적으로 많이 뚫려 있는 탄소 결정구조를 처음 만들어내 2000년과 2001년 연속으로 세계적인 과학저널 ‘네이처’에 논문이 실리는 기염을 토한 바로 그 과학자다. 다공성 탄소 구조물을 만들어내려면 유기화학의 합성 방법이 필수다. 그런데 놀랍게도 유 교수의 전공은 유기화학이 아니라 물리화학이다. 물리화학은 물리학 이론과 실험을 통해 물질의 화학적 성질을 연구하는 분야다. 이에 비해 유기화학은 유기화합물(탄소화합물)의 성질, 반응(합성), 용도 등을 다룬다. 물리화학자가 어떻게 유기화학 연구를 하게 됐을까. 1992년 ‘네이처’에는 MCM41이라는 나노 다공성 실리카 물질이 발표됐다. 연구에 한번 써보고 싶어 이 물질을 구하려 했지만, MCM41은 당시 ‘무명’ 과학자였던 유 교수의 손에까지 좀처럼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직접 만들기로 결심했다. 수개월에 걸쳐 합성을 하는 동안 전문성과 흥미가 생겼다. 유 교수는 실리카보다 우수한 탄소에 눈을 돌렸고, 그 결과 CMK라는 독창적인 나노 다공성 탄소 구조물을 개발한 것이다. “실리카로 거푸집을 만들고 탄소를 넣은 다음 온도를 올려 거푸집을 제거하면 탄소 구조물만 남죠. 이렇게 하면 일정한 크기의 나노 구멍들이 규칙적으로 배열됩니다. 누가 만들던지 똑같은 표준 규격 탄소 구조물을 처음 합성한데 의미가 있어요.”어릴 적 시장에서 먹던 ‘뽑기’ 과자를 만들던 것과 비슷하다. 끈적끈적한 설탕물을 갖가지 모양의 틀에 붓고 구우면 바삭하고 달콤한 과자가 된다. 설탕에도 탄소가 포함돼 있다. 그런데 오래 구우면 설탕이 틀 밖으로 지글지글 끓어올라 과자 모양새가 영 보기 좋지 않다. “CMK를 만들 때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났어요. 그래서 탄소에 황산을 조금 탔죠. 황산은 물분자를 떼어내거든요. 황산이 물을 증발시키는 효과가 있으니 온도를 많이 올리지 않아도 탄소 구조물이 만들어졌어요.” 유 교수는 이 아이디어를 실제로 실험에 적용하기 전에 뒷산에서 오동나무를 베어다 황산이 섞인 설탕물을 넣어 그을려보기까지 했다고 한다. 이렇게 탄생한 CMK의 위력은 대단했다. CMK를 처음 발표한 1999년 ‘물리화학저널’ 논문은 2005년 11월 현재 다른 논문에 93번이나 인용됐다. 수년이 지나면 인용 건수가 줄어드는 게 보통인데, 이 논문은 해가 갈수록 점점 많이 인용되고 있다. 이어진 ‘네이처’ 논문 두 편과 다른 저널의 논문들을 합치면 유 교수의 논문은 1999년부터 지금까지 4865번이나 인용됐다. 노벨상 수상자의 논문 인용 건수가 보통 4000~5000번 정도라고 한다. 인용 건수는 다른 연구자가 그 논문의 결과를 인정하고 자신의 연구에 참고했다는 증거이기 때문에 과학자의 업적으로 의미가 크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낸 비결을 묻자 유 교수는 거리낌 없이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만약 내가 유기합성 분야의 훌륭한 지도교수 밑에서 배워왔다면 스승의 틀을 벗어나기 어려웠을 거에요. 물론 물리화학자가 합성을 하려니 처음에는 엄청 고생이었죠. 실험실에서 새벽 1시를 넘기기 일쑤였으니까요. 하지만 자신이 잘 아는 분야에서만 계속 일하면 새로운 걸 찾기 힘듭니다.” 어린 시절 자라온 환경도 유 교수에게 창의력을 길러주는데 크게 한몫 했다. 그의 고향은 경기도 화성의 한 농촌마을. 당시 어린이는 농촌의 중요한 ‘노동력’이었다. 공부를 핑계로 농사일을 면제받기란 꿈도 못 꿀 일. 온 집안 식구가 수험생을 애지중지 하는 요즘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유 교수 역시 비닐하우스에서 과일 농사를 지었던 부모님을 도왔다. 그리고 수원에 있는 학교로 오가는 기차 안에서, 점심시간에, 심지어는 걸어 다니면서까지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게다가 밤에 전깃불도 들어오지 않는 집에서 공부하려니 등잔불은 물론, 책상과 의자도 직접 만들어 써야 했다. “공부에 관한 것은 뭐든 스스로 하다 보니 창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훈련이 된 것 같아요. 또 우리 마을 주변은 온통 풀밭이고 숲이었죠. 어떤 새가 알을 하루에 몇 개씩 낳는지, 며칠 후에 부화하는지, 어느 곳에는 어떤 나무와 어떻게 생긴 돌멩이가 많은지…. 이런 게 어릴 적 주 관심사였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자연과학에 눈뜨게 됐죠.” 유 교수는 “이제 다시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할 시점”이라고 의욕을 보인다. 십수 년간 계속해온 합성에도 이제 자신감이 생겼다고. 그가 최근 합성에 도전하고 있는 것은 ‘새로운’ 제올라이트 촉매다. 원유를 정제하면 휘발유, 경유, 중유 등이 아주 조금씩 나온다. 휘발유 사용량이 점점 늘어나면서 세계 각국에서는 덩치가 큰 경유나 중유의 분자를 잘라 휘발유로 만들어 쓰고 있다. 이때 큰 분자를 잘게 자르는 ‘가위’ 역할을 하는 게 바로 제올라이트다. 제올라이트에는 1나노미터도 채 되지 않는 구멍들이 뚫려 있다. 구멍 가장자리에 산성을 띠게 하고 구멍에 큰 분자를 통과시키면 잘려나간다. 문제는 이 구멍이 너무 작아 경유나 중유 분자가 잘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 이에 유 교수는 또 한번 참신한 아이디어를 선보였다. “제올라이트 구멍을 골목길이라고 해보죠. 처음부터 골목길만 고집하면 들어가는데 오래 걸립니다. 고속도로를 내는 거에요. 그러니까 고속도로 사이사이에 골목길이 나 있는 구조죠. 큰 분자가 일단 고속도로로 쉽게 진입한 다음 골목길로 끼어 들어가 끊어지게 하는 방법입니다.” 작은 구멍들이 나 있는 벽돌을 엉성하게 쌓으면 중간에 큰 구멍들이 생긴다. 이와 비슷한 모양으로 제올라이트 촉매를 만든단 얘기다. 이를 ‘계층 다공성 구조’라고 한다. 이 아이디어는 현재 국내와 국제특허로 출원한 상태다. 어머니의 꿈속에서 하늘을 향해 힘차게 ‘날아오르던’ 용이 ‘비상한’ 아이디어로 나노세계에서도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미래의 과학도에게 한마디 남들이 하지 않는 개성 있는 연구를 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한 우물’을 파라. 그 우물이 전에 접해보지 않은 우물이면 더 좋다. 그곳에서 자신만의 연구 분야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글/임소형 동아사이언스 기자 soh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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