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그쳐서 오늘까지 세일을 한다는 Fish Oil을 사러 잠시 슈퍼마켓에 다녀왔는데
가는 중간 즈음에 갑자기 폭우가 내려서 그대로 맞고
화장실 핸드드라이어에 머리를 갖다대고 말리고 장을 봐서 나오는데
폭우를 맞았던 그 자리에서 다시 폭우를 만나서 비에 젖은 생쥐가 되어서 왔지요.
화장실의 핸드드라이어는 헤어드라이어의 역할도 충실히 해내더군요. ㅋ
(동네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들고 나섰더니만 비가 와서 저것만 찍고 왔다는..)
어느덧 8월도 거의 끝난 요즘 봄의 문턱에 들어선 애들레이드입니다만
오늘처럼 비가 내리는 날이나 아침과 밤에는 아직도 쌀쌀한 편입니다.
그래서 일찌감치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전기장판을 깔아놓은 침대 위에 엎드려 있지요.
어느덧 100번째가 된 오늘의 이야기는 한 편의 수기입니다.
영어. 여전히 어려워요..
10여 년 전으로 돌아가 중학교 시절로 돌아가서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었을 때, 학교 선생님들은 외국어고등학교 진학을 권유했는데, 학비가 많이 든다는 이유로 제가 그냥 포기를 했습니다. 대학 입학할 때 영어의 중요성이 조금씩 강조되던 때이기는 했지만, 막연하게 대학 졸업하고 적당한 회사에 들어가겠다는 생각이어서 외국어의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해서였습니다. 외고를 간다고 해서 영어가 눈에 띄게 늘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일반계 고교보다는 해외 유학을 목표로 하는 학생들이 많았을테니 이런 점은 미리 눈을 뜨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습니다.
군대를 다녀오고 학교에서 단순노동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데 어느 날 행사가 있어서 통역을 맡은 학생을 본 이후 큰 충격을 받게 됩니다. 외국인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알려주는 표현을 같이 따라서 읽어보자고 하면 따라 읽을 줄만 알았지 말은 전혀 엄두를 내지도 못했지요. 마침 며칠 후에 길을 물어보는 외국인에게 간단한 방향 설명도 제대로 된 문장으로 못하고, 잔뜩 긴장한 채 단어 몇 개 갖다 붙여서 얼렁뚱땅 하고 마는 저의 모습과 그 학생이 생각이 나면서 영어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던 와중에 도서관에서 해외 대학에 관한 책들을 몇 권 찾아 읽게 되고, 교환학생에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지게 되는데 처음에 목표로 한 곳은 북미권의 학교들이었습니다.
휴학을 한 후 종일 아르바이트를 하고, 저녁에 해커스 수업을 듣는데 막상 수업 중에는 졸고 있기가 예사였지요. 집에 가서 복습을 해야 하고, 학습효과를 극대화하려면 스터디 그룹에도 참여해야 하는데 시간은 되지가 않고 집에 가자마자 쓰러지니 능률은 최악이었지요. 말하기에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아서 학교 어학원의 토플 스피킹 집중 강좌도 추가로 신청을 했는데, 레벨 테스트 인터뷰를 하는 도중 말을 제대로 못하자 초급반도 안 되겠으니 환불 받아서 돌아가라는 이야기도 듣습니다. 다시 사무실로 가서 테스트에 떨어져 환불 받으러 왔다는 말을 하는 것이 창피하더군요. 그순간이 잠깐 영어 공부를 해보겠다는 생각을 꼭 해야겠다는 확고한 의지로 바꾸게 된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이후 토플 시험을 봤는데, 역시나 스피킹이 발목을 잡아서 제가 가고 싶은 학교의 요구조건에는 미치지 못해서 지원을 망설이게 됩니다. 어차피 학위를 받아오는 것이 아니니까 가는 것에 의미가 있지 않겠나도 싶지만, 비슷한 비용을 치르면서 다니게 된다면 이름 있는 학교로 가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더군요. 영어에 대한 부담은 복학 한 그 학기에도 영향을 미쳐서 엉망으로 보내고, 호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학연수를 다녀온다고 해서 영어가 확 늘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전혀 아니었지만 비프음이 나온 후에 무슨 말을 할 지 몰라서 머뭇거리다 시간을 보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였지요.
재작년 이 맘 때에 호주에 영어공부한답시고 집을 떠나서 오는데, 한국인 만나기를 피하지는 않지만 애써 만나려고도 하지 않는 생활 덕분인지 대화를 하는데 있어서 울렁증은 많이 없어졌습니다. 일부러라도 영어를 쓸 기회를 만드려고, 멀쩡한 물건을 환불해달라고 다시 찾아가거나 아는 길이라도 물어보고 공포증을 없애려는 노력을 좀 했습니다. 나중에는 아예 거처를 백팩으로 옮겨서 숙박비 대신으로 청소를 하며 머무르며 어학원을 다니기도 했지요. 어학원을 다닐 때에는 비슷한 수준의 학생들이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말을 할 수 있는 장점은 있지만, 여기를 아무리 오래 다닌다고 해서 현지인과 같은 언어구사를 하는 것은 어렵지요.
저의 영어는 일상에서의 의사소통에는 큰 지장이 없지만, 다소 반응이 한 박자 느리다는 점과 특정 단어와 어구를 무의식 중에 반복 사용하는 습관이 있어서 직업적인 환경에서 쓰기에는 부족함이 많습니다.
제가 다녔던 UQ부설어학원인 ICTE-UQ.
(사진 : ICTE-UQ)
어학원은 대학 부설만 다녔는데, 대학 부설 학생들은 진학을 목적으로 한 경우가 많아서 공부 환경은 조금 더 나은 편이라는 평가입니다. 그러다보니 호주 대학을 한 번 다녀보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되고, 작년 여름의 교환학생 지원에서 호주 대학들을 우선 지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걸린 곳이 이 곳 애들레이드군요.
낯을 가리고 먼저 말하기를 주저하는 성격이 영어 말하기 향상에 큰 걸림돌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지금도 일상의 대화, Hi, how are you? 이후 다음에 건넬 말이 없어 난감합니다. 여행지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그나마 "여행"의 주제로 할 말은 많아지는데, 학교라는 일상에서는 그게 또 아니더군요. "아는 사이" 에서 "친한 사이" 이 경계를 넘어서는 것이 문화적인 요인도 있지만, 언어가 장벽이 되니 참 안타깝습니다.
저는 처음 토플책을 손에 쥔 이후 대학 진학에 가능한 점수를 받는데 약 2년 정도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처음 토익, 토플책을 펴놓고 어렵다고 느끼시는 분들이 많으시겠지만, 저런 멍청한 녀석도 있다는 점에 위안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저는 외국어 공부가 재미있지만, 재미와 소질은 늘 함께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늘 깨닫고 있습니다. 영어는 아직도 어렵고 힘들지만, 앞으로 계속 꾸준히 공부를 해야겠지요. 요즘에는 일본어도 취미삼아 조금씩 익히고 있고, 나중에는 전공으로 하려다 포기했던 스페인어도 좀 배우고 싶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ㅋ
기숙사를 포기. Self-housing
"The Village" 라고 불리는 애들레이드의 기숙사는 5명이 한 집을 쓰고, 각자 독방을 사용하는데 주당 195달러(올해 기준, 식사는 본인 해결)입니다. 여태 기숙사 생활은 해본 적이 없어서 한 학기 정도는 살아보고 싶었는데, 학교 정책이 바뀌어 1년 계약희망자에게 우선권을 부여한다면서 미리 1년치인 1만 달러를 입금하라고 하더군요. 제가 총생활비로 1년간 1만 달러정도를 예상하고 있었기에 신청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The Village (사진 : The University of Adelaide)
학교 기숙사가 희망자를 모두 수용할만큼 많지가 않아서 외부 시설에 위탁을 하기도 하는데 이런 곳은 식사가 포함되지만 가격이 저는 감당할 수 없는 정도인 주당 300달러 이상이었습니다. 식사 제공은 크나큰 매력이지만, 여기서 김치와 찌개가 나올 리가 없다는 것도 이 곳의 선택을 주저하게 했습니다. 저는 김치를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호주에서 밥을 먹다보면 반찬을 여러 가지 만들기가 번거로우니 김치에 많은 의존을 할 수밖에 없더군요.
다른 이유로는 공부를 하거나 잠을 잘 때 주변의 시끄러운 소리에 예민해서, 다른 친구들이 파티를 열거나 어울려 노는 것이 염려가 되었지요. 그리고 기껏해야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어린 학생들과 어울려 지내는 것도 적지 않은 부담이 되더군요. 이제 대학 공부를 시작하는 학생들이 행동하는 모습을 보면 가끔씩은 수년 전의 기억을 떠올리게 되는 제가 거리감을 느끼게 될 것 같은 걱정이 있었습니다.
기숙사가 아닌 쉐어하우스를 찾는다면 그 비용을 상당히 줄일 수 있는데요, 저는 1학기 때 학교 근처에 살겠다는 열망에 조금 비싼 가격을 지불해야 했지만, 지금 외곽의 스위트홈으로 옮겨 오면서 그 손실분을 조금씩 메우고 있습니다. 렌트를 해서 쉐어를 주는 것도 비용절감의 좋은 방법입니다만, 집 관리에 은근히 신경이 많이 쓰이고, 집 구하는 것도 쉽지만은 않아서 처음 호주에 오시는 분들께는 비추천입니다. 쉐어를 하다가 조금 호주 환경에 익숙해지면 렌트를 하는 것이 낫겠지요.
그러나 외국에서 온 학생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인 만큼 경제적 형편이 된다면 기숙사 생활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여기서 지내다가도 여러 가지 불편하고 아쉬운 점들(들은 바로는 아시아계 학생들끼리 모아둔다고 합니다)이 있어서 다음 학기에는 친한 이들끼리 따로 나가서 쉐어를 하는 경우도 있다지만, 수업 끝나고 돌아오면 할 일이 마땅히 없어지는 호주에서는 같은 유닛에서 지내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도 큰 재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학교 공부는??
사람마다 다른 부분입니다만 저는 큰 차이를 느끼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평균 이하의 말하기와 쓰기에 비해 듣는 것은 유달리 잘 하는 편이라서 수업 중에 95% 이상은 이해를 하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몇 가지 주요 단어의 뜻을 몰라서 그 단어들이 나올 때마다 적당히 때려잡고 말았는데, 요즘에는 한 눈을 팔지 않으면 무리없이 수업은 따라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어는 멀리서 소근거려도 들리는데 영어는 언제나 귀를 쫑긋 세우고 집중을 해야 하는지라 금방 피곤해지더군요. 수업 세 시간 연달아 들으면 메롱이 되지요.
요즘 아쉬운 점이라면 지난 학기 시험 기간 마지막에는 어수선해져서 두 과목 시험을 엉망으로 봐서 간신히 패스를 한 것인데, 책이라도 한 번 주욱 읽고 갔더라면 하는 후회를 했습니다. 며칠 전에는 D(Destinction)를 받은 과목들에서 성적이 좋았다고 Honours와 Master 설명회에 참석하라는 메일이 와서 아주 못한 것은 아니었다는 자기 위안을 하고 있습니다.
*GPA 산정에 대한 기준은 학교마다 다르겠지만, 애들레이드대학에서 사용하는 방식을 참고로 링크(호주대학의 GPA 산정)합니다. GPA 5.2~5.5 정도를 받으면 Honours입학 자격이 주어진다고 하는군요.
한 과목에서 다루는 범위는 교과서를 벗어나기도 해서 범위는 넓지만, 수업을 듣는 과목의 수가 적으니 과목 1:1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시스템적인 측면에서 보다 체계적이고, 학생과의 커뮤니케이션에 비중을 많이 둔다는 점은 가장 큰 차이가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가장 하기 싫은 숙제는 영어로 에세이를 쓰는 것입니다. 영어로 생각하는 것이 되지 않으니 한국어로 대강 줄거리를 구상하고 영어로 옮기는 바람직하지 않은 방법을 계속 쓰게 됩니다. 그래서 원하는 대로 의미 전달이 되지 않아 아쉬움이 큽니다. 한국어로 써내라고 하면 두 세시간에 후딱 써낼만한 것도 며칠 붙잡고 있을 때는 열불이 나지요.
돌아갔다가 다시 애들레이드로 와서 B.Math로 1년+@로 오고 싶다는 희망은 있으나 현실적인 문제는 전혀 고려치 않은 것이라 그 때 가보아야 알겠지요.
요즘 3주 후에 다가올 방학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즐겁게 보내려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이에 맞추어 일주일 생활비를 150달러 이내로 줄이는 긴축재정정책을 쓰고 있는데(아오~ 요즘에는 누가 과자 한 봉지 사줬으면 좋겠어요ㅋㅋ), 다녀온 이후 재미있는 이야기를 여러분들과 함께 하도록 하겠습니다. ㅋ
100번째 이야기까지 오도록 10달 동안 늘 관심을 가지고 읽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
오타 지적 감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