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그녀와 나의 소소한 일상(part 1)
자양강장숙취제거제 | 조회 61087
삑삑삑삑 띠리릿~

벌써 4일째 취한상태로 집에 들어왔다. 문을 열자 콧끝에 착 감기는 페브리즈 향. 미소를 살짝 띠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뭔가가 가득가득 차 있다. 냉수부터 하나 따서 다 들이키고 냉장고에 붙은 쪽지를 읽는다.

"오빠~ 또 술마셨구나. 식탁에 약 챙겨놨으니까 자기전에 꼭 챙겨먹고, 아침에 국 데워서 꼭 한술뜨고 출근해요. 사랑해."



그랬다. 내 여자친구는 약사이다. 그래서 온갖 숙취제거제, 자양강장제는 달아놓고 먹고 산다.

난 금융업, 엄밀히 외국계투자금융에서 일한다. 촌각에 피가 마르고, 10분단위를 쪼개며, 1시간을 다시 분쇄하듯

잘게 갈아서 그 미세한 분말의 한 알갱이를 하루처럼 여기고 사는 난 데이트레이더이다.

여자친구와 난 그녀의 약국에서 만났다.

"어서오세요"

" 저 자양강장제랑 여명하나만... 우욱~"

난 아침숙취를 이기지 못하고, 그녀 약국바닥에 실례를 했고, 그걸 또 내가 다 치우는 사고가 있었다.

약값을 치루고, 안 받겠다는 청소비를 드리고 도망치듯 그 약국을 빠져나왔다.

다시는 가지 말아야하는 그 약국, 또 아침숙취를 이기지 못하고, 다른 약국가면 시간낭비가 이만저만이 아니기에

다시 발걸음을 향했다.

"어서오세요. ooo씨"

어라? 내 이름을 알고있다... 1초도 안되는 시간에 오만가지 생각이 지나간다.

그리고 내가 주문도 안했는데 내 얼굴과 혈색, 그리고 숙취내음으로 자양강장제와 숙취제거제를 건낸다.

일단 주는거 원샷하고, 물었다. 어떻게 제 이름을...

예전 도망치듯 실례하고 약값 플러스 알파 받으면서 내 명함이 같이 딸려 오더란다.

우여곡절 끝에 그렇게 우리의 자양숙취제거연애는 시작되었다.



일단 숙취제거제를 원샷하고, 보나마나 콩나물국인 냄비에 히터를 댕겼다. 그녀는 늘 쪽지에 아침에 꼭 챙겨먹으

라는메세지를 남기지만 난 늘 그날 밤 자기전에 한그릇 먹는다. 그녀의 따뜻한 손맛을 빨리 느껴보기위해서.

그래도 늘 아침에 먹을 분량이 남아있다. 그녀는 이미 내가 오자마자 국물에 밥 떡하니 말아서 후루룩 먹는걸 알

고 있기에 아침에 먹을 분량까지 2인분을 끓여놓기 때문이다. 그래도 매번 꼭 아침에 먹으라는 이유는 밤에 먹으면 살찐다고...

일단 속 좀 풀고나니 술이 깨는것 같다. 시계를 보니 그리 늦은 시간이 아니다. 내일과 모레 주말에는 외부손님들

과 부킹이 되어있기에 주말에 그녀를 볼 시간이 없을 것 같았다. 벌써 한달째 그녀를 못봤는데... 이 죽일 놈의 금융위기다.

일단 대리를 부르고 샤워를 했다. 난 금융가가 인접한 마포인근 주상복합에 살고, 그녀의 집은 잠원동이기에 밤에 가면 15분이면 간다. 가깝지만... 차막히면 먼거리.

나도 먹었으니 그녀도 먹어야한다는(사실 그녀는 내가 보기엔 좀 마른편이다. 본인은 S라인이라 주장은 하지만)

괴상한 논리를 되세기며 베이커리에서 고열량의 대명사 슈크림과 치즈케익을 주섬주섬 챙겨 대리기사한테도 좀 드시라 나눠드리고

나도 하나 먹어보며 그렇게 잠원동으로 향한다.



꿈나라로 가려고 폼 잡고 있음은 분명하다. 밤잠이 빨리오는 그녀는 그 흔한 10시대 방영되는 드라마도 소화하기 힘들다.

"나야. 뭐해?"   "응 오빠.. 자려구요"   "내려와"   "헤헤헤 네~"

"헤헤헤"의 그 웃음의 의미를 잘 안다. 보고싶은데 바쁜거 아니까 부담될까 표현하지 못하는 마음. 혹시나 와 줄까 기다렸던 마음.

5분여가 지나 내려온다. 빠르기도 하셔라. 그 시간 아껴서 데이트때 늦지나 말지...

내가 그리도 귀에 못박히도록 얘기했던 아파트 거주민의 매너는 오늘도 지켜지지 않았다.

오늘은 파자마 바람에 웬 망토를 걸친게 아닌가...  물론 그녀의 비매너(?)를 감싸주기 위해 그녀가 가지는 최소

한의 동선에차를 주차하긴 했다. 웃음지며 차로 걸어오는 그녀의 총총걸음을 보며 오늘은 너의 비매너를 매너모드로 확실히 고쳐주겠다 다짐하는 중...

그녀가 차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두 손을 내 뺨에 올린다.

"따뜻해..."

내 다짐은 차가운 그녀의 손이 녹기도 전에 또 다시 무너져내렸다.



조잘조잘, 재잘재잘, 이러쿵, 저렁쿵...

당연하지. 하루만에 봐도 하루종일 일어났던 대소사를 쉴새없지 재잘되는 아인데, 한달을 못봤으니 어찌 입이 쉴 새가 있을까. 아예 입에 모터를 달았다.

"아야... "

그녀가 내 팔을 꼬집었음에 고통의 반사작용으로 나오는 소리다.

그랬다. 졸았다.

그녀의 얘기에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피곤하기도 했지만) 그녀의 말투와 억양때문이다.

나만 느끼는 것이라고 그녀는 늘 타박하지만 그녀의 말투와 억양은 매우 리드미컬하다.

있지~이~ , 그래서어~~, 그랬던거야아~~  어머어머~~ 중간중간 악센트도 준다. 푱~ 휙~ 싹~ 팍~ 쉭~ 팅~ 기타등등

3/4박자 재잘재잘 자장가... 모짜르트가 울고간다.

"어 아빠~~"

그녀 휴대폰으로 집에서 전화가 온 모양이다.

한손으로 휴대폰 발신부를 막으며 "오빠~ 아빠가 괜찮으면 맥주한잔 하시제"

동공이 확대된 그녀의 두 눈이 꿈뻑꿈벅 거림과 동시에 난

"나 내일 외부손님들이랑 골프 ...음음응" 그 순간 휴대폰 발신부를 막고 있던 손으로 내 입을 틀어막고는 하는 말이...

" 아빠앙~ 지금 올라갈께~ "

두달전 그녀를 집으로 데려다 주는 길에 밤운동 중이시던 아버님께 걸려 여친 댁에 엉겹결에 끌려갔던 일이 있던터라 큰 부담은 없었다. 이미 4명의 식구(여친의 부모님과 여동생)에게 동물원 오랑우탄이 된 양 구경당한 적이 있어서이다.

여친의 댁에 들어가서 부모님께 인사를 올렸다. 이미... 맥주상이 차려져 있었다. 우리가 차에서 내려 올라오는 시간동안차려질 맥주상이 아니었다.
이미.. 세팅이 끝난 상태였던것이다. 만면에 웃음을 띄면서 눈동자만 돌려 여친을 쏘아보니.

시쳇말로. 쌩깐다.

마셨다. 잔 비우니 아버님께서 한잔 주신다. 또 마셨다. 또 비우니 어머님께서 한잔 주신다. 또 비웠다. 이번엔 여친이 맥주병을 잡는다.

복수의 시간이 다가왔는가... 나도 시쳇말로. 쌩깠다. 그러나 잡지도 않은 잔에 그냥 맥주 부어버리는 여친이다. 날보고 살짝 웃고는 안주 준비하러 부엌에 계신 어머님 옆으로 도망간다.

맥주를 많이 마시니 반응이 금방왔다. 참다참다 잠시 실례를 하고 화장실로 갔는데 그냥 일을 보면 좀 민망할 것 같았다.

다른 방법이 있을까. 변기에 앉아 일을 처리하는 수 밖에...


맥주잔이 돌고돌며 아버님께서 이리저리 궁금하신 것들 하문하시는것에 답하다보니 우연히 내 미국 MBA시절얘기까지왔다갔다하고, 본인도 의대다닐때 힘들었지만 보람있었다는 등등의 얘기가 오갔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난 자네 눈빛이 마음에 들어. 특히 내 딸 바라볼때의 그 눈빛이. 내가 안과 경력 20년에 자네같은 눈빛 몇명 못봤네."

"제가 **이 노려볼때를 보신 모양입니다."

다들 그냥 웃었다. 허허허(아버님), 하하하(어머님), 키득키득(여친), 풋~ 푸하하하(여동생)

그렇게 두번째 여친 댁에 엉겹결 방문을 마치고 다시 대리를 불러 집으로 향하는 중...

창문을 내려 한강 찬바람을 맞으며 담배 한대 피니 온갖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잊고 지내려했던 미국에서의 생활이 대화화제로 나오면서부터였다.

지금까지 내 인생중 가장 찬란하고도 빛났던, 그리고 지옥불속에서 몸뚱아리를 태우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던 그 때.

진정 사랑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여자에게서의 배신, 존경했고, 또 충성했던 선배형님으로부터의 조소와 멸시.

그 둘의 사랑을 바라보며 눈물 훔치던 수많은 밤과 밤들.

그 둘도 이제 학위따고 들어왔겠지...

담배 한모금에 그냥 날려버렸다. 내일 외부손님과의 약속에 집중하기 위해.